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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 방송가의 불공정과 비정함에 대하여
이은혜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7월
평점 :
내 생의 지름길과 에움길이 갈라지는 지점은 고등하교 3학년에 있었다. 늘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고3 갈림길에서 작가가 아니라 도서관을 택했다. 문예창작학과와 문헌정보학과 합격증을 각각 한쪽 손에 들고 저울질하다 문헌정보학과에 입학 등록한 것이다.'글쟁이 배 곪는다'는 부모의 만류가 절반, 그리고 '책 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 보는 사람으로 살면 되지' 라는 약팍한 마음 절반으로 한 선ㅌ택이었다. (-32-)
'원래 그런 것' 이라는 말은 기득권의 언어다. 논리와 혁명에 대응하는 가진 자의 마스터키다. '원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여성들은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고, 흑인과 백인이 따로 앉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과정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작은 어렵지 않다. '원래'를 뒤집으면 된다. 방송작가는 원래 휴가가 없다는 말의 '원래'를 , 프리랜서는 원래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원래'를 뒤집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89-)
작가들은 본인이 작업한 기사가 송출되는 순간을 기다렸다. 취재와 섭외, 타이핑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이니까,나와 함께 일했던 한 동료 작가는 본인 이름이 적힌 바이라인이 처음 나가는 날을 다이어리에 표기해 두고 고대하기도 했다. (-118-)
그렇게 2014년부터 작가로 살다가 2019년 갑작스럽게 '계약해지'를 당했다. 인간은 경험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라고 하던데, 내가 그랬다. 부끄럽게도 큰일을 겪은 후에야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방송작가들이 '방송작가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162-)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개 글을 통해 "이재학 pd와 같은 고용 및 노동차별 문제가 언론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벌어졌다면 언론의 관심이 지금처럼 적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227-)
책장을 덮고 나니 무심코 지나쳐 가던 동네 지구대도 예전과 다르게 보였다. 글을 통해 잠시나마 한 경찰관의 자리에 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험을 많은 이들이 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잠시나마 서로의 자리에 서 볼 수 있다면 티끌만큼의 이해라도 자라나게 될 것이라고 믿기에, 설령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혐오하지는 않을 것 같기에. (-261-)
방송국, 방송작가, 열정페이,이 세가지는 거의 단골처럼 서로 엮이고 있다. 돈과 꿈,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송일을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새롭게 그 직업을 가진 이들을 쳐처다보게 된다. 이상적인 관점에서 그걸 보게 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불공정, 불합리, 불공평함,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방송가에서, 언론이 해야 하는 일, 방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방송작가의 입에서 직접들을 수 있고, 그들에게 일과 꿈은 무엇인지 간접적인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그릴고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라는 언어를 바꾼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즉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의 쓰지 못한 단하나의 오프닝을 엿볼 수 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점점 더 우리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미디어 채널이지만, 방송작가에게,특히 저자처럼 프리랜서에게,방송 작가는 자신의 모든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소위 어떤 프로그램이나 뉴스의 끝자락에 올라가는 자막들, 그것을 책에서는 바이라인이라 부르는데,그것이 방송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부각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책임과 의무, 권한과 역할에 대해서, 하나 하나 검증해 나가는 시간이며, 이 책에 등장하는 불공정과 비정함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즉 살아남고, 견디는 것, 철저한 분업은 그들에게 여전히 요원한 현실이며, 그 안에서 보여지지 않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책 속에 기술되어 있다. 삶의 희노애락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방송작가도 마찬가지다. 월급 40만원으로, 방송에 필요한 사람들을 섭외하는 것이 일인 방송자가에게 달을 따올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는 것은 웃픈 현실이며,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혐오와 차별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하나 방송에서, 방송사의 밑바닥을 통해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