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철 2 - 너희가 세상에 온 도리를 알겠느냐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으니 닦음과 깨침의 세계가 확연해졌다. 그것은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였다.
성철은 두 사상에 관해 자신만의 견해가 정립되자 결국 보조지눌이 주창한 "먼저 깨딸음을 얻은 뒤에 닦는다"는 돈오점수에 동의할 수 없었다. 깨달음과 깨침은 분명히 다른 사상임을 알게 된 것이다. 깨달음이 지식,즉 앎을 종자로 하는 것이라면 깨침은 앎을 비워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그런 세계였다. (-29-)


"절대로 아니다. 절을 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부처를 만나 스스로 깨치라는 거다. 그것이 바로 스승님의 가르침이다. 세상의 시선에 왈가불가할 필요가 없다. 부처님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깨치라는 것이 그분 가르침의 요지다. 그걸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살고 계신 것이야." 그때부터 일휴는 한때 살을 맞대고 살던 남편이었고 지금은 도반이 된 성철을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111-)


아이가 미는 바람에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 적도 있다그래도 성철은 제자들에게 절대로 나무라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천진무구한 생명의 몸짓이자 인간의 본래면목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저 모습으로 되돌아가야만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그제야 비로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220-)


고려시대의 승려였던 지눌은 돈오점수를 설파하였고, 성철 스님은 지눌의 돈오돈수를 비판하면서, 돈오돈수을 설파하게 된다. 지혜와 지식, 앎에 대한 불교적 이해를 돕는 것, 인간의 본성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학문을 탐구하였던 성철 스님이 다다른 곳은 불서의 근본, 돈오돈수였다. 즉 내 안의 앎이 지식을 넘어서서, 지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식을 비워낼 수 있어야 한다. 즉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식을 비움으로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바로 성철 스님이 자신의 생애 전체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이었다. 1993년 그가 삶을 마감할 때, 자기 스스로 현세에 할 일을 다하였다고 말하였다. 그건 삶에 대한 집착과 번뇌에서 자유로운 상태였을 때 가능하며, 삶과 죽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성철스님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을 아는 것,이성과 감정의 차이를 알고 있을 때, 유연함과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스스로 책귀신, 책벌레가 될 정도로 학문의 깊이가 상당했던 성철 스님은 스스로 앎에서 자유로워진 상태, 앎을 게워냄으로서, 지혜를 얻게 된 것이다. 그건 앎에 도취된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주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고,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얻은 앎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순간 책에서 멀어지고, 진정한 깨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말씀, 불성의 본질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