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부재판 - 소송과 한국의 원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의 기록
하나후사 도시오.하나후사 에미코 지음, 고향옥 옮김 / 도토리숲 / 202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대  = 일본군 위안부"라는 한국 사회의 오해를 다시 확인시킬 만한 우려를 안겨 준 점.
당시의 일본 사회를 혐한 감정이 만연해 있는 듯이 그린 점.
스스로 전후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진심으로 일본 사회를 바꾸려 했던 변호인과 지원모임의 활동이 누락된 점. (-20-)


"종군 위안부 제도를 여성 차별로 인정하고, 또 기본적인 인권침해로 인정한 점은 평가할 만합니다. 입법 부작위에 다른 배상을 인정한 것은 의외란 생각까지 듭니다. 이느 재판소가 국가에 대해 '법률을 만들어 보상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일본 정부에 판결로서 압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 측에서는 전면 패소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89-)


2.노동자 확보를 위해 실시된 강제 연행 실태.
3.전쟁 전 전쟁 중에 구 육해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간여해 여성에게 조직적으로 지속적인 강제 성적 행위로 끼친 피해 실정, 그 밖의 성적 강요 실태에 관한 사항. (-169-)


"지쿠호는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탄광 주택들을 중심으로 유행했는데,메이지 후기에 그 대책의 일환으로 장례법을 매장에서 화장으로 전면적으로 바꿨씁니다. 그 때문에 지자체와 대규모 탄광에서 화장장을 만들었죠." (-191-)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 비배를 미화하고 가해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아베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제도를 '강제 동원' ,피해자를 '성노예' 로 표현하는 것에 강한 거부 반응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이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을 결여한 것입니다. 그에 더해, 요시다 세이지 씨의 증언과 '쿠말라스와미 보고서'로 일본의 명예가 지나치게 실추댔다는 불신감이 있을 것입니다. (-230-)


양금억 할머니는 한국의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나자, 2019년 6월에 광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분들과 함께 일본에 오셔서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씁니다. (-275-)


관부재판(關釜裁判 시모노세키 재판)은 1992년 부산의 일본군 '위안부' 및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의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청구한 소송'이다. 여기서 관부(關釜)란 한국 부산시(釜)와 일본 시모노세키(關)를 아우르는 지역명이며, 이 두 지역을 묶음으로서, 두 나라의 화해가 일어나려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를 정신대 할머니와 다르게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일본의 입장이 두 단어에 적시되고 있어서다. 역사적 화해를 넘어서서, 전쟁에 대한 사죄 없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상처 치유가 관부재판의 역사적 의미로 보고 있으며, 일본의 역사적 과오와 일본의 양심있는 지식인의 시선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대사관 앞에서 1000번의 시위가 있었음에도, 일본 정부는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그건 그들이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전쟁을 은페하려는 그들의 의도가 자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얼마 전 한일 협정에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배상 책임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의 오만과 독선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즉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왜곡된 것을 바로 잡고, 14명의 위안부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의미와 가치가 지속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역사적화해 없이는 일본과 한국의 우호적인 협력은 요원하다는 걸, 전국에 세워지고 있는 소녀상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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