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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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응급실에서 열일곱시간을 보낸 끝에 나는 긴 수술을 받았다. 12월 30일 이른 아침, 팔과 가슴에 튜브를 꽂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 나는 주먹을 쥘 수 없었다. 그러나 주먹을 쥐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나는 팔꿈치를 딛고 침대에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13-)


죽음에서 뒷걸음쳐 나온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상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찾고 있었고, 서가와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그 하나였다. 서류들을 이리저리  정리하면서 나는 또한 기억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었다. 마음 속에서 황토색 커튼을 몰아내고 싶었다. (-55-)


우리가 그렇게 건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나은 길들이 존재한다. 아들이 태어나고 아내와 내가 오스트리아 병원에서 나올 때, 병원에서는 메고 다니기 편한 기저귀 가방에 아기 옷과 담요가 든 '키트'를 주었다. 빈 시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망각된 안내 책자도 받았다. 거기에는 아이를 돌보기 힘든 엄마들을 위한 개별 지원 프로그램, 공공 육아 서비스, 그리고 공립 유치원과 학교 정보가 들어 있었다. (-101-)


병상을 유지하는 일에는 비용이 든다. 미국의 민영의료시스템에서는 어떤 병원도, 다른 병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 여분의 병상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금전 논리가 외료 논리를 지배하는 한, 미국은 항상 감염병에 무방비 상태일 수 밖에 없다. 여분의 보호장비나 산소호홉기가 있을 수 없고 여분의 보호 장비나 산소호홉기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169-)


연대란 발을 빼는 사람 없는 모두의 참여를 뜻한다. 미국에 생겨난 병폐의 근원 중 하나는 극소수 집단의 경험을 여타 모든 이들의 경험과 분리시키는 현격한 부의 불평등이다. 플라톤이 알고 있었듯, 부의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부자들이 통치하는 중우정치로 이끈다. 돈이 유일한 목적이 되면, 가치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소수의 집권층을 모방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생명이 단축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기보다 소수 집권층이 꿈꾸는 불멸의 환상을 부러워하며 그런 짓을 하고 있다. (-190-)


코로나 팬데믹은 전세계 각국이 대한민국의 공공의료에 대해서, 의료혵책와 국민의 건강에 있어서 모범적인 나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공 의료가 전염병 예방을 넘어서서,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가 책임져 준다는 신뢰와 믿음의 기회였다. 한 국가의 공공의료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좋은 선례였다. 하지만 현실 한국은 공공의료 위기가 있었다. 남들보다 공공의료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만들어지고, 공공의료의 적자에 대한 문제점, 의료의 질적 저하를 도외시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미국의 민간의료가 국민의 만족도를 증가시키지 못하고, 의료의 주체인의사와 병원의 입장만 고려한다는 문제의식을 언급하고 있었다.실제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학자 키머시 스나이더는 현재의 미국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민간의료는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즉 현재는 과거와 현재-미래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현재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래가 없다는 인식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 10여년 동안 수술을 하고 , 응급실에서, 자신이 생명을 담보로 하는 그 순간, 몸은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이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과 미국의 민간의료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책은 그 하나 하나 고발해 나가고 있으며, 역사학자의 문제의식은 미국 사회의 변화의 씨앗이자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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