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5
세라 해거홀트 지음, 김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6월
평점 :
"두어달 있다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할 거야. 결국 수술도 받을 거고 그래서 점점 내 몸이 나하고 어울리도록 바꿀거란다. 하지만 우선 여자로서 생활을 시작해야 해, 이제." (-39-)
하지만 이상할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아빠는 면도를 하고 화장을 했다.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너무 짧지도 너무 딱 달라붙지도 않았다. 아빠 멍리카락이 그렇게나 길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오늘 스타일이 전부 달라졌는데 왠지 제법 여성스러웠다. (-88-)
누가 나한테 소리내어 책을 읽어 준 지 분명 몇 년이 지났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아빠는 언니하고 나한테 졸곧 책을 읽어 주곤 했다.특히 우리가 아팠을 때 , 제이미 방을 지나칠 때면 디가 잠자리 동화를 읽어 주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내가 잠자리 동화를 읽기에는 부쩍 자랐다는 걸 알면서도 약간 질투심이 일었다. (-152-)
"하지만 질병은 아니야. 트렌스젠더라는 건 치료하거나 바뀌는 게 아니야. 어쨌든 무척 오랬동안 시도했지만 할 수 없었어.그렇게 해결하느라고 우리 둘, 몇 년은 걸렸어. 지금도 여전히 해결하고 있고, 너희한테 더 이상 비밀로 하지 않으면서...." (-228-)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프랑스혁명을 가르치면 우리 어린아이들한테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 버리라고 부추기게 되나요?" (-255-)
살다 보면 ,무언가 도전하게 되고, 노력하면 가능한 것이 있고, 노력해도 되지 않은 것이 있다. 전자는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계획적인 삶을 살아가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후자는 골치아픈 부분이며, 우리 삶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소위 폭탄 선언을 하거나, 비밀을 감추거나, 과거 속으로 묻어 버릴 때가 있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설 <괜찮아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는 우리 앞에 놓여진 삶과 인생을 고민하게 된다. 청소년 소설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는 우리에게 남겨진 인생의 두 갈래길에서 ,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판단하지 못할 때, 후자에 해당되는 선택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으며, 소설 속 주인공 이저벨의 아빠(?) 데이널 파머는 어느날 폭탄선언을 하여, 세 남매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주인공은 집에서는 이지 ,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저벨 파머이다. 언니 메건과 늦둥이 동생 제이미 사이에 샌드위치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이지는 아바의 폭탄 선언이 가장 혼란스럽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독특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빠를 최대한 많이 이해하려고 하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었다. 즉 아빠의 폭탄 선언은 자신의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다. 성전환에 대해서, 동성애를 말하고 있는 아빠는, 이지를 당황스럽게 하는 주체이다. 하지만 아빠도 사정이 있었다. 결혼 후 30여년동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그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며, 그로 인해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된다. 이지는 절친 그레이스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었다. 처음 어색해 보였던 아빠의 또 다른 여성스러운 모습, 남자에서 , 여자로 변하면서, 데니얼 파머가, 디로 바뀌게 된다. 이름과 성정체성이 어느 정도 합이 맞아 떨어지는 그 지점에 아빠가 있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여기에 있다. 데니널이 디가 되면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 자신의 용기를 스스로 표현하고 싶었다.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해와 공감을 얻고자 하는 노력들이 엿보이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당황스러움은 때로는 차별과 상처, 혐오로 나타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이지에게 억울한 상황이 얼마든지 표현될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 소설에서 짚어 볼 부분은여기에 있었다. 내 앞에 놓여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며, 아빠의 내면 속 혼란스러움을 가족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 느껴 볼 수 있으며, 한편 우리 사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한국 사회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어디이며, 앞으로 어떻게 동성애자들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까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