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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기억 1
윤이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6월
평점 :
"범인을 목격했다고는 하지만 9살 아이에겐 너무 큰 충격이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힘들어요. 범인을 잡는 게 아무리 급해도 아이가 천천히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그럼 점차 아이도 안정을 찾을겁니다."
"뭐라고요? 혜수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16-)
정우는 아내가 죽은 후, 교수직을 내려놓고 동네에 작은 병원을 개업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정신의학과 의원이지만 그는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기억 삭제술'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가 맨 처음으로 기억을 지운 것은 딸 수아였다. 사고 이후 수아는 계속 잠만 자려고 했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25-)
"갑자기 민아가 기억을 지운다고 했을 때 무슨 기억을 지울거냐고 물어봤어요. 뭔 트라우마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학창시절에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전 그런가 보다 했죠.그러고는 며칠 후에 기억을 지웠는데 다음 날부턴가 갑자기 자기 딸을 못 알아보는 거예요." (-116-)
서두원의 친엄마는 그가 3살 무렵, 아빠가 빚으로 사채업자들에게 쫒기자 그를 고모에게 맡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로 그는 엄마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빚을 갚지 못했던 아바는 결국 교도소에 갔고, 출소 이후 서두원은 아빠란 둘이 살았다. (-179-)
DNA 체취 대상 범죄는 방화, 실화, 약취, 유인, 절도, 강도, 폭력행위, 강간, 추행, 성폭력, 살인 등이다. 인욱은 서두원이 전과가 없기 때문에 수형인과 구속 피의자들에 한한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는 등록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신원 불상의 혈흔은 대체 누구야 ? 설마 피해자가 2명 더 있는건가? 이씨...." (-215-)
그 시각 ,수진은 차를 타고 서두원의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놈의 미행을 맡겨 놓은 흥신소 직원이 교대 없이 식다의 밥을 머고 오거나 ,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뒤로 영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서두원이 낚시 도구가 든 가방을 들고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258-)
정우는 시 원문을 몰랐고 지수가 단순히 필사했을 거로 생가했다. 지수는 마치 어떤 게임처럼 시의 한 단어, 한 구절, 때론 연과 행을 바꿔서 그에게 선물했다. 정우가 이 사실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릴케의 시에선 마지막 문장을 첨가했다. 훌륭한 문장은 아니었다. 그녀가 굳이 시를 고쳐 쓰는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정우도 딱히 묻지 않았다. (-297-)
소설 <놈의 기억1>의 소재는 인간의 기억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억을 가지고 있고, 기억을 통해 사유하고, 세상의 여러 조건들에 대해서 선택하고, 판단한다. 인간이 만든 수많은 개념들도 기억에 의존하고, 기록에 의존한다.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매개체를 기본으로 깔고 만들어진 제도다. 즉 인간의 기억이 사라지면, 법과 제도는 큰 의미가 없고,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그 불완전성을 알기 대문에, 상황과 맥락을 만드시 포함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즉 기억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그에 대한 책임이 경감되거나 소멸되는 이유는 그래서다. 소설 <놈의 기억>애서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작용되는지 파악한다면, 여러가지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된다.
소설 <놈의 기억 1>은 주인공 한정우가 등장한다. 사람의 기억을 삭제하고, 누군가의 기억을 이식할 수 있는 뇌과학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교수인 한정우는 우수하고, 특별한 기술에 대해,우리는 그 기술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제거하는 용도로 쓰여진다는 걸 기본으로 깔고 시작한다. 하지만 정우는 그것을 넘어서서 다양한 용도로 인간의 기억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이식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을 이식하고, 기존의 기억을 제거한다. 그럴 경우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해서 관계와 대화에 있어서 혼란스러움은 불가피해진다. 과정에서 어떤 연쇄 살인이 일어나게 되었고, 유력한 범인이 등장하게 된다. 서두원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것은 의심과 심증은 가지만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 소설에서 정우와 경찰관 인욱이 등장하는 것을 본다면, 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어떤 연쇄살인의 가장 유력한 범인,그리고 연쇄살인과 여러 사람의 죽음, 사체가 발견되고, 누군가의 뇌의 형상이 정우의 뇌 형상과 일치하게 된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서, 서건의 의도와 목적,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불완전성은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 ,차근차근 따져서 물어보게 되었다. 소설은 우리에게 기억은 생존의 도구이지만, 악용하면, 범죄가 될 수 있고,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오용이 되거나 악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