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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독 -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현정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그동안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 '이상적인 엄마'로 인기를 얻었다 하더라도, 글 하나 잘못 올려서 혹은 잘못 올렸단 의식조차 없는 상태에서 정의 중독자들에게 '용서해선 안 될 표적'이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독한 안티팬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는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종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문제다. (-27-)
'나 말고는 다 바보다' '나 빼고는 더 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나 말고는 다 뛰어나다' '나 빼고는 다 친구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매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므로, 누가 더 잘 나고 못났는지 따져서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80-)
결국, 정의는 하나뿐이라는 전제 때문에 토론으로 승화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권위자들이 내린 방침에 따르는 우수한 장기말이 되는 것이 정의이며, 정의의 대립을 권력 투쟁이나 주도권 싸움에 이용해 왔기 때문에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동료에 대한 배신이라 여겼다. (-70-)
인간은 자신이 줄곧 말해온 것, 해 온 것,믿어 온 것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껏 남들에게 보인 모습과 모순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얽매여 있다.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일관성의 원리 Self-consistency'라 부른다. (-119-)
하지만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보면, 옛날 정치인들이 현역이었을 때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인정할 만한 일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당시 대중매체는 동시대 정치인의 문제점을 계속 찔러댔고 선거법도 당연히 지금과 달랐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개혁한 결과 지금에 이른 것인데, 어째서인지 안 좋았던 점들은 잊고 만다.그러면서 그저 '그때는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까? (-129-)
하지만 원래 성실함, 착실함, 청초함, 지식바보, 잉꼬부부, 친근함, 고학력, 우등생 등의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그 연예인을 실제로 만난 적도 없으면서 ,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이미지를 믿는다.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마치보도된 기사가 진실인 양 받아들인다. (-162-)
책을 읽는 이유는 나를 알고, 나를 바꾸고,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과정들이다. 이해릏 하는 과정에서 설득할 수 있는 요령과 노하우를 얻게 되고, 타인의 글과 말의 맥락을 알아듣게 된다. 그리고 나를 바꾸고, 타인을 바꾸고,사회를 바꿀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을 찾아낸다. 이 와중에 내 손에 든 것이 나가노 노부코의 <정의 중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제목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정의 중독사회라는 것을 미리 말해 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표출된 공간이 맘까페, 청와대 청원에 나타난다. 맘까페에 올라오는 글들 속에는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글들이 올라오게 된다. 대체적으로 지역에 일어나는 일들,자극적인 것들, 비판받을 것들이 올라오면 다양한 반응, 비난 댓글이 달리게 된다. 그것이 정의 중독 사회의 일반적인 전형이며, 사회적 이슈,내 아이와 연결된 사건들에 민감하다.
청와대 청원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청원은 일종의 아고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적 미담보다 나쁜 사건들, 권리주장을 위한 글들이 많으며,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올리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정의구현이 압축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잘하던 어떤 사람이라도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즉 100가지 잘해도 1가지 못하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비난과 비판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정의 중독에 빠지게 되면, 그 당사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지만,허위나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정작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다. 소위 정의구현사회를 강조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읿반적인 모습이며, 우리 사회의 또다른 독이 될 때가 있다. 정치인과 연예인이 하나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의중독과 부끄러움 ,수치심이 엮이게 되면, 어떤 극단적인 행동의 원인으로 작용된다. 그것이 타인이 될 수 있고, 내가 그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의 중독의 왜곡된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며,우리의 어리석은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