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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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견지에서 '싫어함'은 음식에 대한 역겨움에서 기원했다. 역겨움을 유발하는 것은 똥과 오줌이 있는데.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나 동물의 것이 더 역겹다. 침이나 토사물, 흘리는 피 등도 여기에 속한다. 더불어 음식에 꼬이는 파리나 바퀴벌레, 쥐가 파먹은 음식 또한 깨끗할 리가 없다.
역겨움은 메스꺼움이나 욕지기에 가깝고, 이런 역겨움은 사회생활에서 또 얼마나 많이 느끼는가? 위선자, 배신자, 매국노 등은 말할 것고 없고, 가장 강렬한 싫어함이나 역겨움은 죽음이나 가난과 같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무거운 주제로도 옮겨간다. (-52-)


'민망하다'는 표현도 부끄러울 때 잘 쓰는 말이다. 그런데 민망은 '근심하고 멍하니 있다'는 뜻이라 직접 부끄러움이 드러나지는 않고, 부끄러움 때문에 생겨난 마음의 상탤르 나타낸다. '민망하다'라고 할 때는,'부끄러움 때문에 머리가 멍할 정도로 근심이 됩니다'와 같이 겸양을 담는 표현이 된다.

"망신스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구나." (-85-)


윤리를 어기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수치가 생겨난다. 더 하면 치욕적일수도 있다. 그런데 도덕을 어기면 스스로 내면에서 부끄러움과 수치가 생겨난다. 이른바 '윤리적 인간'은 사회의 질서에 잘 적응한다. 반면 '도덕적 인간'은 간혹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것에 저항한다. (-175-)


"회피'는 수치가 일어나는 상황을 애초부터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매사에 무관심하고,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는 늘 불안하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완벽한 것을 추구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자신을 온통 더럽히는 난잡한 삶을 산다. 
"부정"은 수치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자신에 대해서 매우 지나치게 자존심을 내세우고, 타인을 벌레처럼 보며 우월감을 과시한다. 열등감의 반대 표현이 그렇듯이 말이다. 또한 자신을 무시한다고 터무니없이 타인을 몰아세운다. 고압적이면서 잘난체한다. 허세를 피우고, 거의 모든 잘못은 남의 탓이며, 독선적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전형적인 투사의 방식이다. (-218-)


조선의 선비들은 출사를 해 치국과 평천하를 하는 교화보다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일이 최소한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선비로 퇴계 이황을 꼽을 수 있다. 그의 호는 '물러남'의 의미를 짙게 띄고 있다.그리고 졸도 역시 그의 심경에 가깝게 있었다. (-301-)


수치는 알몸이고, 성, 말하자면 '도저히 다스릴수 없는 음란한 성욕'이었다. 인간은 자신 안에 살아있는 동물(자연)의 본성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내 안의 동물을 죽이고 길들이기 위해 이성이 등장하고, 수치로부터 이성과 감성은 날카롭게 갈라섰다. 이성을 높이는 자들은 감성을 누르려고 , 감성이 피어나는 신체를 억압했다.이는 동물과 자연에 대한 학대다. (-359-)


나라가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조선 말엽에서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었지만,인간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수치가 간헐적으로 나타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1960년대 군부 독재 시대에 주도적으로 장발머리 단속과 머리를 눈앞에서 자르는 행동은 일상 생활 속에서 수치 유발이다. 그런데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항의할 수 없었다. 수치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인간과 괴물의 마음 ,수치가 매 순간 드러났고, 인간은 사회의 도덕과 윤리에 의해 길들여졌다. 즉 이 책은 우리의 수치가 음식에서 진화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서, 구토, 혐오스러움, 수치가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즉 이 책은 수치의 사회적인 역할 뿐 아니라, 조건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몇몇 정치인이 수치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것도, 이후, 연예인들의 자살 선택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수치이며, 수치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즉 대한민국 사회는 서로 비교하고, 비교하는 과정에서 서로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자괴감,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여기서 우리의 삶 속에 반영되어 있는 여러가지 원인들 속에서 ,맹자 사상에서 수치에 해당되는 수오지심이 울히 삶에 내재되고 있으며, 동양의 선비 사상의 근원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서양의 철학과 다른 모습이 있고, 위선자, 배신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연결될 수 있고, 그 안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부끄러워 하지 않는 마음을 읽게 된다. 나를 잃지 않고,맹자 사상에서 사단(四端),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을 이해하고,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할 수 있는 경계를 확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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