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어느 날의 물건 - 일러스트레이터 배현선의 사는 마음
배현선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향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쥘 수도 없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 우리를 쉽게 흔들 수 있는 게 아닐까? 향기 속에는 추억이, 장소가, 만남과 이별 그리고 수많은 감정 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다.때때로 어떤 향기 속에서 우리는 그리움을 마주하기도 하고, 쓸쓸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향을 맡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추억에 사로잡히는 일도 있다. (-23-)


내가 걸어온 길 외엔 알 수가 없으니 완벽한 이해란 사실 불가능할 것이다. 대신에 간접적인 경험들로 조금씩 나의 세계는 확장되어가고 풍성해진다. 생각과 상상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은 덤이다. 책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침대 옆에서, 책상 위에서, 가방 속에서 책들은 지금도 내게 끝없이 무언가 속삭이고 있다. (-43-)


위로가 필요한 날, 지친 마음을 달래 줄 카레를 만든다. 소박한 재료들로 간단하게,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만드는 나를 위한 카레,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김이 모락몰팍 나는 따뜻한 밥과 계란프라이가 올라간 황급및 카레가 식탁에 놓인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숟가락으로 카레가 올라간 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86-)


붕어 모양의 판이 일사불란하게 뒤집히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 노릇하게 구워진 붕어빵이 흰 종이봉투에 담겨 내 품으로 왔다. 막 만들어져 뜨거운 붕어빵을 조심조심 꺼내들고 꼬리부터 한 입 메어 물었다. 겉이 바삭하고 달큼한 이 맛! 겉은 베어 물때마다 귀를 간질이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97-)


가만 돌이켜 보면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는 것도, 사진 앨범을 보는 것도 아주 좋아했다. 틈만 나면 동생과 나란히 엎드려 엄마가 정리해둔 커다란 앨범을 펼쳐들었다. 두툼한 겉표지에는 매직으로 커다랗게 오래된 순으로 숫자가 쓰여 있고, 안에는 사진들이 비닐에 덮인 채 반듯하게 끼워져 있었다.(-125-)


길고양이들은 무더운 여름에는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지나다니며 그늘을 찾아 나서야 하고,겨울에는 꽁꽁 언 물을 핥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서로의 체온으로 긴 밤을 나야 한다. 그리고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가 수두룩 빡빡하다. 어디 이뿐만이겠는가. 모두가 그들을 칱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뉴스에서는 길고양이를 괴롭히다 못해 차마 글로 적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방법으로 생명을 앗아 버리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154-)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간다. 과거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도 있으며, 미래를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과거를 살아가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알차게 살아간다 말하고, 미래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꿈을 볼 때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물과 수많은 생명체들이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한번 내 곁을 지나간 누군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날 때가 있고, 우리의 삶이 점점 우울함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행복 이전에 위로와 치유, 회복, 사랑이다. 나를 아끼고, 타인을 아끼는 것, 그 과정에서 상황이나 조건에 매몰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견디면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 책은 사물에 대해 말한다. 사물에는 생명이 엮여 있고,그 생명은 자신의 언어를 사물에 투영할 때가 있다. 한 때,너무 당연하게 쓰여졌던 어떤 사물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젠 잘 쓰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와 공중전화, 사진 앨범이다. 당연한 것들이 어느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변질된다.


얼마전 지역에서 전시회를 직접 보게 된다. 30일동안 세번에 나뉘어서, 전시하는 것이며, 어떤 건 나에게 너무 익숙한 현재였고, 어떤 것은 나의 과거 속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도 있었다. 문득 나는 이 책을 통해 과거 ,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게 되었고,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자 하였다. 사물과 물건, 그것은 현재 내가 쓰고 있지만, 앞으로 똑같은 걸 쓸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편리가 더해지면서, 새것이 낡은 것이 되고, 그 낡은 것을 또 다른 새것으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말하는 수많은 낡은 것들이 태생부터 낡은 건 아니었다. 쓰다가,쓰여지다가 낡아진 것 뿐이다.그래서 현재 내가 좋아하고, 즐겨 먹는 것은 소중하다. 한편으로 인간은 한가지 착각하고 있다.사물만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낡아질 수 있다는 그 사실 말이다. 그것을 잊고 지내는 삶은 결국 스스로 물행의 늪으로 빠지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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