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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었냐고 묻기에 - 김이수 시집
김이수 지음 / 책익는마을 / 2021년 5월
평점 :
청산도
완도항 오십 리 뱃길
산도 바다도 푸르대서 청산이라지만
헐벗고 주린 삶 얼마나 팍팍했을까
겉보리 서 말보다 못한 섬 살림이라니
그 옛날, 소리꾼 영화로 뜨기 전에는
뉘 알았을까 여기 청산이 있는 줄을
여기 허기진 빈들에 애절한 아리랑
아련히 영화처럼 흐를까 싶었지만
빈들의 허기는 간 데 없이
유채꽃 화사하고 고성의 잡음만 자글거려
송화의 아리랑은 청산을 떠나고 없어라. (-19-)
꽃창포
금빛 부신 햇살
오월 내내 머금어
뿌리에 쟁였을까
단오 창포에 감아
창포 비녀로 쪽진
우리 누나 머릿결
햇살 향기가 났다. (-50-)
사는 것
기다려 탄 버스에서 내려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다
맞은편의 기다림을 보며
다들 기다리며 사는구나
사는 게 기다림이겠구나
나는 누군가를 기다려주고
누군가는 날 기다려주어
그리 기다림들 어우러져
비로소 한세상 사는구나
죽음이야 굳이 기다리지
않앋고 절로 오는 것이니
사는 것만 기다릴 일이다.
그 설렘으로 견딜 삶이다.
비 기다려 한낮덜 가련가
하늘이 흐려 아련하구나(-67-)
별리別離
있을 때는 몰라
내가 있는 것만큼이나
늘 있을 것 같아서
그리 쉬 떠날 줄은 몰라
남아 있는 것들은
그래서 늘 후회가 남아
손이라도 한번 잡아줄 걸
말이라도 좀 살가울걸
밥이라도 한 끼 나눌걸
후회는 늘 부질없지만
그게 사는 것인가 싶다가도
남은 눈물에 세월이 젖어
있을 때는 몰라.
내 삶을 이룬 그의 삶을
가고서야 울음이 복받쳐
좀처럼 보내지 못하는 밤
그의 부재가 아니라
너의 존재를 애도해.(-77-)
책을 보다가
전에는 하루에 한 권을 읽어도 까딱없었는데 요즘은 겨우 한 대목을 봐내기도 자주 버겁다. 책 쓴 이의 짠한 마음이, 또 그 책에 나오는 이들의 고통 슬픔 자꾸만 밟혀서 읽다 말고 금세 덮곤 한다. 참, 책 한 권 읽어내기도 힘겹도록 아픈 세상이다. (-111-)
붕어빵
어저께 방원역 앞에서
저 ~삼춴원어치요 , 하고
붕어빵 굽는 모습을 보는데
고숩고 달큼한 저것 하나가
간식으로 내 삶도 되겠지만
끼니로 저 분 삶도 되겠구나
삶은, 빵하나로 맺어져
이렇게 면면히 흐르는구나
붕어빵 한 다리만 건너면
이 삶 저 삶 서로 기댔구나
나 혼자만 잘났다, 그러면
내 삶도 별것 아니겠구나
붕어빵 하나를 시퍼보면
내 삶도 그리 시퍼지겠구나 (-155-)
시를 읽으면서, 내 삶을 성찰하게 된다. 봄 ,여름,가을 ,겨울,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은 이렇게 계절로 구별될 수 있고, 시간과 사람을 구분짓게 된다. 같은 장소도 계절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 삶에 비추어 내 삶을 거울처럼 낮춰 보게 되었다. 삶ㅇ티 있으면 죽음이 있고, 우린은 흔적과 후회를 남기게 된다. 시인 김이수님의 시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같이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결정적인 순간 같이 살아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이 책은 가난과 삶,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다. 나의 삶도 소중하지만, 타자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결코 내 삶과 타인의 삶을 분리시키지 못하게 된다. 즉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삶의 가난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우리 삶의 부자들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건 나와 타인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서민들의 음식 붕어빵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 매일 매일 그 앞을 지나가면서, 놓치고 있었던 타인의 생각을 , 사유를 시상으로 접하면서, 나는 내면의 죄책감에 빠져들게 되었다. 현대인들이 마주하는 삭막한 사회에서 나는 그에 대한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나에 대해서 관대하면서, 타인에 대해 엄격한 그 모습, 누군가의 붕어빵을 사먹음으로서,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삶이 내 삶과 간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즉 삶이란 그런 것이다. 함께 해도 멀어지는 것, 머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는 것이 삶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 속에서 나의 삶은 죽음과 동떨어질 수 없었다.나의 삶읊 보호하고 싶다면 타인의 삶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