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야무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너희들이 살던 세상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돌아갈 수 없다. 이 길을 지나가지 못한 자는 이곳에 서 떠돌아 살아야 한다. 이곳은 너희들이 살던 세상과 저기 저 세상의 중간 세상이지.떠돌며 살다 보면 또 이길을 지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하지만 기회를 얻는다고 해서 다 선택 받지는 못하는 법, 수천년을 떠도는 영혼이 아직도 숱하다. 그 영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어떤 건지 알기에 그냥 모른 척 있을 수가 없어 너희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 열 세명 중에서 이길을 지나갈 수 있는 자가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모른다. 열셋이 다 지나갈 수도 있고, 단 한명도 지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길은 오디션 합격자에 한해서 지나갈 수 있다. 그것이 절차다." (-24-)
"오류의 약점을 또 다른 곳에도 써먹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하여간 세상으로 나가기 전, 영혼이었을 때부터 문제가 많더니 끝까지 말썽이군요. 중간에 교묘하게 새치기를 해서 세상에 나간 거 아닙니까? 끝까지 시간을 채우지도 못할 거면서 남의 기회를 빼앗아가더니 , 하여간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입니다.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말입니다."
"사비, 일단 명부를 확인하러 다녀와야겠다. 나도희와 도진도,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무슨 의도인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 휴, 나의 측은지심으로 인해 이렇게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어쩌다가 오류를 저질러사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161-)
1년 전 읽었던 책 <저 세상 오디션>이다. 이 소설은 소설이면서, 동화처럼 느껻질 정도로 박현숙 작가 특유의 동화적 문체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은 단테의 대표적인 저서 <신곡>을 연상하게 되었고,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을 한 권의 책에 녹여내고 있다. 책 <저세상 오디션>은 죽은 이들에게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는 마천이 등장하고 있다. 현생에서 어떤 일로 인해 죽게 된 열 셋 죽은 영혼들이 마천 앞에 나타나게 되었고, 오디션을 통과해야만,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즉 오디션에 통과하지 않으면, 영혼들은 떠돌아 다니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저세상 오디션은 상당히 어렵고 ,난이도가 최상이다. 수천년동안 10차례의 오디션에서 1차 오디션에 합격한 이들은 단 한번도 없다. 이 책을 읽는다면 왜 1차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하는지 알수 있다. 그건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노출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으며,비밀을 감추려는 마음이 저세상 오디션 과정에 잘 나타나고 있다. 거짓과 진실 사이에 오가면서, 진지한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으며, 각각의 영혼들이 언제 죽었고, 남은 인생은 얼마인지 알 수 있다. 젊을 수록 남은 인생이 많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문제는 그들이 필사적으로 오디션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비밀들을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밀을 가지고 있어도,그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 저 세상오디션에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오디션을 통해 무덤을 파는 영혼의 출연자들, 그 안의 내막들을 자세히 본다면, 나 자신의 죽음 속에 억울함이 온전히 남의 탓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내 안의 문제가 어떤 일에 엮이면서, 생긴 억울함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