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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반야심경 1
혜범 지음 / 문학세계사 / 2021년 5월
평점 :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기쁩ㅁ이 있으면, 슬픔이 있거늘, 그러므로 기쁨과 슬픔을 가다듬어 선도 없고 악도 없어야 비로소 집착을 떠나게 되는 것을, 하고 경전 쪼가리를 읊으며 해인은 산을 내려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20-)
조바심이 일었다.보호자를 부르라는 거였다. 그동안 혼자서도 잘해냈다. 피붙이라고 삼촌이 있었다. 하지만 불귀의 객이 된 처지였다. 봄에 꽃 필 때도 혼자였고 꽃이 질 때도 혼자였다. 혼자서도 잘 놀았다. 멀쩡한 척 평범한 삶을 살았다. 홀로 가고 홀로 오는 길, 홀로 잠들고 홀로 깨어애 하는 삶이었다. 해인은 도연 슨임을 생각했지만 가슴이 부우옇게 흐려졌다. (-91-)
수행자는 단순해야 한다. 복잡하게 살지 마라. 상처 없는 사람이 어찌 있는가. 너는 너의 선택에 달려 있어. 어제까지의 너는 아버지 엄마의 아들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그게 아니고 너의 아버지, 너의 엄마라는 실상을 잊어서는 안 돼. (-159-)
썼다가 지웠다. 결국 독하고 모질게 살아남으라던 엄마에게 인절미를 한 말해서 보냈을 뿐, 편지를 써 넣지도 못했다. '너의 아버지는 너의 삼촌, 지효 스님이 오셔서 장례를 잘 치러 주셨다' 라는 문장 앞에서 해인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래도 삼촌은 해인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뭘 해야 할 줄 몰랐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생일 뿐이었다.수영이나 암벽타기, 운전 같은 건 절대 할 수 없는 몸이었다. (-217-)
산다는 건 죽음과 엮여 있었다. 태어나서 함께 였던 이가 죽을 때는 혼자가 된다. 누구나 고아가 된다는 말은 그냥 지어낸 것은 아니었다.돌이켜 보면, 우리가 혼자가 되는 그 시잠이 다를 뿐 ,혼자가 되는 것을 보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이 책에서 삼십 대 해인스님이 겪어야 했던 삶은 자신이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오로지 삶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삼촌 혼자였을 때 ,마주해야 하는 것은 책임과 의무이다. 누군가 내 가까운 사람이 불귀의 객이 된다는 것은 슬픔과 연결된다. 그때 우리는 죽음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내 때로는 보호자가 되어서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그 순간이 나타날 때도 있다. 살아가면서 행복한 사람은 혼자가 되는 순간을 삶의 끝자락에 두는 사람이다. 역설적이게도,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 , 혼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그 순간이 찾아올 때, 그럴 때 우리는 악착같이 살아야 생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야심경은 ,팔만대장경 속의 불교의 이치를 270자에 압축해 놓은 책이다. 소위 우리의 삶에 대해서, 불교적 이치가 담겨져 있으며, 삶아가면서, 수행하는 삶,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 기록해 나가게 되었다. 번뇌라는 말, 보리라는 말은 불교에서 빠지지 않는 않았고, 이 책에서 해인스님에게 번뇌와 보리란 무엇인지 그 실체에 접근하게 되었다. 내 삶에 있어서 번뇌란 고통의 근원이었으며, 보리는 그 고통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나 의지였다. 즉 내 삶의 번뇌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나의 삶 속에 중요한 것들 ,무형의 가치들, 내 삶을 보존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같은 삶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평온한 삶이, 누군가에겐 죽기 전까지 불행한 삶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인스님의 일상적인 삶에서 내 삶을 비교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