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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까짓, 집 - 없으면 안 되나요? ㅣ 이까짓 2
써니사이드업 지음 / 봄름 / 2021년 5월
평점 :
이사를 일주일 앞두고 남편은 나를 새로 구한 집에 데려갔다. 이제 막 도배를 마친 방 두 개짜리 아파트, 난 첫 눈에 깨달았다.
분명 이 곳엔 '내 한 몸 뉘일 공간'이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음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둘이 살기엔 조금 작았고 신혼집이라기엔 많이 낡았지만 , 그가 살 공간에 나를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에 감동받아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20-)
마음에 드는 집도 금방 찾았다. 문제는 너무 금방 찾은 나머지 첫 번째 집 만기를 한 달 정도 남겨둔 채 나놔야만 했다는 거다. 이사 좀 해봤다는 독자님들이라면 눈치 챘겠지만, 여기서부터 사달이 났다.
두 번째 집을 구해준 중개업자는 최대한 빨리 계약하길 원했다. 하지만 살던 집의 중개업자는 그 얘길 듣자마자 우리 뒤로 들어올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남은 계약기간 중 공실인 기간을 일할 한 월세와 보증금 일부,그리고 복비까지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며 겁을 줬다. (-51-)
하지만 언제까지나 신혼일 수는 없는 법, 남편의 모든 것이 예뻐 보였던 얼마 간이 지나자 다툼이 시작되었다. 30년이 넘도록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하루 아침에 한 집에 살기 시작했는데, 싸우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건만 사랑 넘치는 일상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던 나의 연재 기간이 길어질수록 대나무숲으로 들어가 소리치고 싶은 알들이 늘어만 갔다. (-87-)
오빠와 나를 데리고 50평 신축 아파트가 18평 낡은 아파트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짐을 줄여 이사해야만 했던 엄마,아빠, 두 분 사이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고작 두 번의 이사를 함께 한, 아이없는 6년 차 부부인 우리는 그 앞에서 감히 '부부 사이의 정' 같은 단어는 꺼내지 못하리라.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식의 얘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오래 전 두 분이 함께 나누어 진 고난이 있었기에 지금의 부모님이 계신 거라 믿는다. (-127-)
웹툰 작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6년차 부부, 작가의 이력 속에 감춰진 프로필이다. 프리랜서로서 남편을 만나, 서로 삶을 공유하는 과정 속에 집이 있었다. 누구나 꿈꾸는 그 환상의 집에 대한 생각이 깨지는 그 순간 서로 다툼이 시작되었고, 서로 아웅다웅하는 이유가 된다. 즉 이 책에서 집이란 삶에서 필수적인 조건이자 내 삶의 결정권을 지고 있는 주체가 되었다. 이사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감정과 희노애락이 있다.즉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여러가지 메시지들은 익숙한 집에서 낯선 집으로 바뀌면서 시작되었다. 친정 집에 터전을 두었고, 살림도 친정집에 있었다.그리고 결혼 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둘 만의 공간, 둘만의 방이 있었던 집은 신혼집으로 적합하였고,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할 거라 생각하였다. 작가로서, 프리랜서로서 작업실이 필요했던 저자에게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고, 서서히 콩깍지가 씌어지게 된다.
한편으로 착각은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시작된다. 콩깍지가 하나씩 벗겨지는 순간이다. 서로의 착각,작업 공간이 당연히 있을 줄 알았지만,그 작업공간으로 만들어진 빈 공간은 남편의 살림들로 채워지게 된다. 바쁠 땐, 바빠서 불편하고, 안 바쁠땐 안 바빠서 불편한 사이, 어릴 적 자신의 집에 대한 향수가 짙게 드리워질 수 있었던 건 여기에 있다. 50평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낡은 집 작음 평소로 옮겨야 했던 지난날에 대한 기억은 인생의 트라우마였다.그 과정에서 나의 삶과 나의 집, 더 나아가 함께 해 왔던 그 공간들이 서서히 무너지게 되었으며, 자신만의 이기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