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길이 아니더라도, 꽃길이 될 수 있고 - 조은아 산문집
조은아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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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와 방향치를 모두 갖고 있는 내가 가본 적 없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일은, 때론 미로 속을 헤매는 것보다 더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내비게이션은 신의 선물 같았다. 찾아가는 장소를 알고 , 최소 시간까지 계산하여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실로 많은 이들의 목적지에 탄성을 불러냈다. 삶에도 이런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3-)


"아이고 똑똑한 딸이 마음까지 예쁘네."
"엄마가 힘들게 키운 보람이 있네요."
"세상에 요즘 이런 효녀가 어디 있어요?"


맞장구쳐주고, 거들어주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쌓여갈 수록 수심 깊은 해녀분의 검은 낯빛에 발그레 생기가 돌았다. 한 사람이 시작하면, 어느 새 자식 이야기는 탁구경기의 탁구공처럼 주고받으며 가속도가 붙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자식 자랑 배틀이 절정으로 향하는 순간이다. (-47-)


엄마도 계절의 틈새마다 풀썩 주저앉는 일이 꽤 있었다. 그래서 바삐, 바삐 다가오는 봄이 두렵기도 했다. 아직 엄마의 몸은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막바지 겨울바람이 부산스럽게 거둬가는 노쇠한 이파리들이 우리 엄마일까 조마조마하던 날들도 많았다. 더디더라도 노쇠한 봄도 절은 봄보다 원숙하게 아름다울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겨울과 봄 사이에 기도했다. 그렇게 계절의 틈새마다 흩날리는 바람결에, 돋아나는 꽃잎에, 발에 걷어차니는 낙엽들에 안타까운 사모곡을 실어보냈다. (-105-)


상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어 공감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맞춤 디자인을 할 때는 더 많이 고민을 하는 편이다. 수학 문제처럼 딱 떨처지는 정답이 없는 것이 디자인이기에 의뢰를 받고 나면 갈래갈래 피어나는 생각들로 갈피를 못 잡을 만큼 , 디자인은 여전히 어렵고도 흥미롭다. 이런 이유로 생각의 가지치기를 위해 면밀히 살펴보는 촘촘한 시간을 가진다. (-148-)


"사람에게 걷는다는 건 살아있다는 의미야.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내 걸음을 보며 삶의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내 마음을 다스리기도 해. 그리고 내 발로 화장실이라도 편히 다닐 수 있어야 너희들 맘도 그나마 편해지지. " (-176-)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시간 속에서 함께한 사람들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흘러와보니 행복한 시간 뿐만 아니라 , 아프고 슬펐던 시간들로 한껏 아름다웠다. 그 시간을 나눈 인연들에 감사함을 전한다.

순간마다 함께한 사람들의 이름을 매만지면, 어느새 햇살한줌이 내 마음에 찾아와 노크한다. 나에게 다가와 번진 햇살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데우리라.(-205-)


삶 속에 시련이 있고, 삶 속에 고난도 있었다. 삶과 죽음, 생과 사, 누봄여름 가을겨울,누구나 공평하지 않는 그것이 내 앞에 갑자기 휘몰아칠 때도 있다. 원망스러운 그 순간에 왜 내 앞에 그런 아픔이 찾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생의 길치와 방향치를 동시에 만나게 될 때, 우리는 그 순간 방황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가까울수록, 내 가족일수록, 내 일일수록 그 심연의 깊이는 더 커질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인생이야기가 파도 위에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의 삶이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순간에 내 앞에 놓여지게 될 때, 나는 고통 그 자체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이십대 ,이유없이 가족의 생가 사가 자신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는 걸, 죽음으로 빠져들어가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갈 때의 그 심정은 혼자 만이 알 수 있을 뿐이며, 그 누구도 알지 못할 때가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주 당연하고도 평온한 일상이 저자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평온할 때, 혼자만 불편하였다. 무거운 책임감, 자신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순간에 스스로 무기력함에 내몰릴 때가 있었으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때, 그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견뎌야 한다는 것, 반드시 겨울이라는 차가운 파고를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하는 그 순간, 마주해야 하는 것응 내 앞에 놓여진 누군가의 이생에 대한 채무였다. 죽음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낀다면, 삶의 가벼움과 미안함을 함께 얻게 된다. 즉 내 앞에 찾아온 고난에서 나 스스로 꽃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만약 내 앞에 저자처럼 비슷한 상황이 찾아온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되는 날이 올 것 같다.내 가족의 죽음 앞에서 누구나 동등해진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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