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아버지
장은아 지음 / 문이당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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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목이 늘어진 티셔츠에 고무줄을 넣은 월남치마를 입고 기차역에 앉아 있다가 석탄을 잔뜩 실은 기차가 지나가고 난 뒤 빈 철길 위를 절룩거리는 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철길에 떨어진 석탄 덩이들을 양동이에 주워 담던 모습이었다. 엄마는 그것들을 모아서 장에 내다 팔기도 했고, 겨울에는 우리 집 난로에 넣고 불을 때기도 했다. 역장님과 역무원 아저씨는 기차가 지나간 후 엄마가 빈 선로 위에서 석탄을 주워 모으는 걸 눔감아 주었다. 그들은 큰 선심을 베푼다는 듯이 엄마 앞에서 거들먹 거렸고 엄마는 묵직해진 석탄 양동이를 들고 자라목으로 굽신굽신 인사를 했다. (-30-)


내가 인사를 건네자 정혜는 피아노 의자에서 발딱 일어서더니 쪼르르 건넌방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방은 예전에 내가 복순언니의 팔을 베고 잠을 자던 방이었다. 이젠 정혜와 신혜가 그 방을 쓰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애들이 모르는 전생을 살았던 기분이 들어 정혜가 사라진 방문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안방 장지문이 열리더니 성북동 어머니가 나왔다. (-95-)


"난 제 삼자에요. 두 사람 사이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다만 정섭이 상처받게 될까 봐 나는 그게 불안해요. 그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내 말이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이런 문제는 서로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또다시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요. 정섭 씨를 만나고 나서야 제 마음에 안정을 찾았어요. 이제야 겨우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그런 정섭씨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저를 받아주세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속으로 눌러 삼켰다. (-194-)


"듣기로는 자살이 확실하다 그카더라만. 에이. 또 모르제 워낙 남의 말 하는 것들을 좋아하니까. 동네 여편네들 쑥덕대는 소리 들었다. 그래 새장가도 안 들고 달랑 딸 하나 데불고 홀애비로 산다 카드만." (-254-)


1970년대, 1980년대의 우리의 모습이 묻어나는 소설 한 편이다. 이 소설의 제목을 찬찬히 보면, 지역이 나오고, 호칭이 등장한다.  이질적인 단어가 책 제목 위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에 지역명을 쓰지 않으며, '나' ,'우리' 대신 '지역'을 붙인다는 것은 서로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의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심사가 책 제목이 드러나 있으며, 소설 속 주인공 박수혜의 심리적 묘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소설 <성북동 아버지>는 탄광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여식이자 성북동 아버지의 딸 수혜가 등장한다. 철길 위를 달리는 석탄 화물열차가 지나가면, 그 철길 뒤에는 석탄 덩어리가 남아있게 된다.소위 개도 만 원짜리 종이지폐를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석탄산업 호황기 때 가능한 우리의 사회적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그렇게 삶의 터전을 석탄에 올인하였던 수혜의 엄마에게 아빠의 존재감,남편의 존재감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나을 정도로 계륵이었고, 고난이었으며, 고통이었다.작가는 바로 그런 우리의 깊은 정서,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정서를 소설 속에 반영하고 있으며, 절대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되는 존재에게 용서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즉 소설 속 주인공 박수혜에게 용서란 성북동 아버지를 나의 마버지로 바꾸는 데서 시작되고, 자신의 여동생 정혜와 신혜를 받아들이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핏줄을 인식핳 수 있으며, 죽음 앞에서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된다. 즉 이 소설에서 용서란 적극적으로 후회를 만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선행될 때 일어날 수 있으며, 목구멍에 잠겨 있는 것을 스스로 꺼낼 수 있을 때 ,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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