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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 - 태조에서 순종까지, 왕의 사망 일기
정승호.김수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5월
평점 :
단명한 왕은 문종(39세),단종(17세), 예종(20세), 성종(38세),연산궁(31세), 인종(31세), 명종(34세), 현종(34세), 경종(37세), 헌종(23세), 철종(33세)이다. 그러나 단종은 세조에 의해 살해당해 질병으,로 죽지 않았다. (-18-)
정종의 설사병은 이방원에 대한 두려움과 왕위를 둘러싼 동생들의 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대장증후군으로 추측된다. 정종은 아버지 이성계가 걱정할 정도로 만성적인 설사병에 시달렸다. (-41-)
"돗개부리(개 돼지)가 어느 앞에서 돌아다니며 호령하느냐? 내 위에 윗사람이 없으니 누가 내게 전지를 내리며, 사약이란 것이 아디에서 났더냐? 나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없고 나를 호령할 자가 없으니 너는 빨리 돌아가 명을 전하라."
사약이 내려지자 격분한 단종은 계속 호통을 쳤다. (-83-)
연산군은 큰 키, 가는 허리, 뽀얀 얼굴, 적은 수염을 가졌는데 이것은 양기가 허약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신체 조건이다. 이것으로 보건대 연산군은 허약하고 냉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아버지 성종이 사망한 후 여차라는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하루 5번 곡을 해야 했으니 얼마나 체질이 허약해졌을까? (-131-)
인종에게 간질이라는 증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발작 증세는 눈동자가 돌아가거나 침을 흘리거나 말이 어눌하고 신체 일부가 약해지면서 발작이 뒤따르면 간질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인종은 그 재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59-)
광해군의 질병에 대한 광해군 일기의 기록을 찾아보면 본래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었고 특징적인 고질병은 안질이었다. 그 외에 화병, 감기, 치은통, 종기 등으로 시달려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질병으로 사망할 정도의 심각한 병은 없었으며 폐위된 이후 유배 생활을 하다가 노환으로 자연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185-)
현종은 딸 명혜공주와 명선공주가 1673년 4월과 8월 잇따라 세상을 떠나자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674년 어머니 인선왕후 장씨마저 세상을 떠나자 극도의 슬픔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고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된 채 왕위에 올랐듯이, 이제 왕위에서 내려올 때에도 혈육과 갑작스럽게 이별하면서 몸과 마음이 허약해졌던 것이다. (-223-)
1920년 10월 13일의 일기를 보면 독살설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고종이 식혜를 마신 지 30분이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킨 후 사망했다. 고종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디를 찢어야만 했다. 민영달과 몇몇 인사는 약용 솜으로 고종의 입안을 닦아내다가 고종의 이가 모두 빠져 있고 혀는 닳아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30센티미터나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 고종이 사망한 직후 궁녀 2명이 의문사하기도 했다. (-310-)
대한민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시대 공식 사관원에ㅐ 의해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이 있으며, 왕의 하루 하루의 일상을 쓴 승정원일기가 있다. 이 두권이외에도 조선시대에는 여러가지 야사가 많았고, 조선의 역사와 생활상까지 어느정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록문화가 발달해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 두번의 전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 실록이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정도전이 나라의 근본 기틀을 세운 덕분이며, 태조 이성계부터 , 순종에 이루기까지 500년의 역사가 조선왕조실록에 담겨진다.27대 왕들의 죽음을 세세하게 파헤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에 있다.
즉 이 책의 기초자료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다. 그러나 저자는 27대 왕들의 공식적인 죽음과 비공식적인 죽음 ,이 두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있다. 대체적으로 영조 임금처럼 장수한 왕들, 자연사한 왕들은 공식적인 죽음에 일치할 가능성이 높으며, 세세하게 왕들의 질병 뿐 아니라, 병의 증상, 약처방 등등 ,죽음 원인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단명하거나, 사고에 의해 죽은 왕들은 대체적으로 공식 기록에 의존하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이 망국으로 향하는 철종 이후의 조선의 왕의 죽음은 공식적인 죽음보다 야사에 기록된 죽음이 더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한가지 , 그 시대에는 서양의학이 도입되지 않았고, 지금처럼 다양한 병명이 없었다. 단지 당뇨병이나 스트레스, 종기, 학질,천연두, 낭종,피부병이 왕들의 죽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암이나 간질, 독살과 관련한 죽음의 원인은 기록에 의존하여,저자 나름대로 왕들의 죽음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며, 영정조 임금의 치세가 조선시대 세종임금에 버금갈 정도로 높았던 이유는 장수한 두 임금이며, 왕으로 재임했던 기간이 길었고, 그로 인해 100년 넘는 시간동안 안정정인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단종의 죽음은 슬픈 우리의 아픈 역사이다. 단종의 유폐이후 세조가 즉위하면서, 단종복위운동이 강원도와 경상도를 주축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혼란은 불가피해졌고, 세조의 권력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즉 이 책에서 본다면, 왕의 사후 조와 종으로 끝나는 임금이라 하더라도, 광해군과 연산군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임금이 있었으며, 그 대표적인 임금은 세조와 인조이다. 더 나아가 고종 임금의 독살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조선시대 역사 기록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으며, 고종 임금의 석연치 않은 죽음은 1919.3.1 운동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