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즐거운 조울증
기타 모리오.사이토 유카 지음, 박소영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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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살이다. 그러나 조울증은 순환하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반드시 낫는다. 나는 우울증 시기를 '벌레의 겨울잠'이라 부르고, 반드시 낫는다고 믿으며 빈둥거렸다. 식사도 하루에 딱 한 번 ,잠은 저녘 7시까지 잤다. 그게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5-)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아침, 신문지에 "기미코 바보" 라고 매직펜으로 쓴 메모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날이 지타 모리오의 아내 기미코와 딸 유카까지 휘말리는 처절한 조울증의 시작이었다.(-68-)


딸 은행예금도 바닥나서 내 세뱃돈까지 가져다 썼으니까. 대담 사례비는 은행으로 이체하지 않고 직접 봉투에 현금을 담아서 줬어. 아빠가 현관에서 엄마한테 봉투를 건네면 엄마가 손날을 세웠는데, 이걸 뭐라고 하지? (-84-)


아빠가 조증이었을때 정신없이 나방을 쫒아다니던 게 생각나! 여름에 가루이자와에 갔을 때 말이야. 내가 취업했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가루이자와로 출발해서 밤에 도착하면 집 전체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창문도 전부 열어서 아빠가 나비와 나방을 잡겠다고 곤충 채집망을 휘두르고 있었어. (웃음) (-139-)


조울증이 잦아들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집.그러나 1999년 세기말을 앞두고 갑작스레 그것이 찾아왔다. 일흔둘이라는 고령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조증! 자신의 육필 원고를 판 돈으로 긴자에서 한바탕 시끌벅적.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오늘날,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한은 현대인에게 보내는 두 사람의 마음 따뜻한 메시지는 과연. (-179-)


사이토 모기치의 아들로 태어난 기타 모리오의 본명은 사이토 소키치로, 1927년 생, 글을 쓰는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이다. 그리고 사이토 유카는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이며, 기타 모리오의 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일본 작가이지만, 일본 현지에는 어느정도 저명있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조증과 우울증이 없었던 그 시기에 기타모리오가 가지고 있는 예기치 않은 질병이 일본인들에게 각인되는 시기였고, 우울증과 조증이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병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독특한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기타 모리오의 유작이기도 하다.


딸과 아버지의 대담은 유쾌하고 정겨웠다. 여름철이면 갑자기 조증이 찾아와서, 기발하고, 독특한 발상으로 주변 사람들을 웃겼던 기타 모리오는 가을이 오면, 삶에서 우울증이 와서 '벌레의 겨울잠'처럼 매일 매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딸은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으며, 우울할 때의 기타모리오의 모습과 매순간 에너지가 넘치는 조증일 때의 기타 모리오의 모습이 서로 상반되어서 , 딸 사이토 유카의 삶을 흔들어 놓게 된다. 하루 하루 잠에 취해서, 밥도 챙겨 먹지 않았던 기타 모리오는 조증이 오는 날엔 매일 매일 이벤트였고, 뭔가를 기획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된다. 때로는 세기말, ,1999년 일흔이 넘었던 그 시기에도, 조증이 갑자기 찾아오면서,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명분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 책은 한비야처럼 조울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하루하루의 에피소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게 된다. 높은 하늘 위의 다리에 올라가서, 기다란 외줄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것은 위태로운 순간순간들이 모여있는 남다른 시간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버려두지 않았고, 자살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시도, 새로운 도전을 기획하게 된다. 현재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조울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내려놓고,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들의 삶이 나의 삶과 다르지 않는 함께 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즉 차별과 편견으로 조울증을 바라보지 않는 비결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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