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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2년 1월
평점 :
그럼 무엇이 쾌락이고 무엇이 고통일까? 그건 오직 '합리적 인간' 그 자신만이 안다. 무엇이 나에게 얼마만한 쾌락 또는 고통을 주는지는 오로지 나 자신만 안다. 우리 어머니든 학교 선생님이든 대통령 할아버지든 국가 정보원장이든, 나말고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그런 판단을 내리거나 간섭할 수 없다는 말이다. (-24-)
아담 스미스 이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도박을 이 "억제할수 없는 욕망에 휘둘린 사람들의 불합리한 행동"으로 치부했는데, 사실 돈을 따기 위한 사업으로 치면 도박은 손해보는 장사임에 분명하다. 주택복권을 예로 들어보자. 틀림없이 1등에 당첨되는 방법이 있을까?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그 주의 주택복권을 몽땅 구입하는 것이다. (-76-)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는 진실이다.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에게 그렇다. 개인에게 옳은 것이 사회 전체에도 언제나 옳다는 법은 없다.예컨데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1998년을 생각해 보자.실업자가 폭증하고 봉급이 깍이고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지자 대부분의 주부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을 늘렸다.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을 대비하기 위해서 외식비를 줄이고 아이들 학원릃 끊고 남편의 용돈도 깎았다. 미장원 출입을 삼가고 새 옷 사는 일을 미루었고, 고장난 세탁기도 고쳐서 썼다. 이 모두가 다 개인적으로는 불가피하고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160-)
IMF사태를 불러온 것은 국가채무가 아니다. 재벌과 금융기관 등 민간기업이 외국 금융지관에서 얻어 쓴 빚이 원인이었다. 기업들이 대외채무를 갚지 못하게 되자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무너졌고, 그래서 한국 돈의 가치가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나면서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IMF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이런 사태를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국민경제 전체가 주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다.하지만 한 가지, 앞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민간의 대외채무이지 국가채무가 아니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29-)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해결책이 없지 않다. 자유무역 덕분에 포르투갈의 포도주산업이 얻는 이익은 그로 인해 섬유산업이 당하는 피해보다 크다. 포도주산업의 이익 가운데 일부를 들어 섬유산업의 피해를 보상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을 원만하게 해치우는 정부는 별로 없다. 한국과 중국의 마늘 분쟁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전자제품 제조업체와 수출업체는 많은 이익을 내지만 마늘 재배 농가는 손실을 입는다.전자제품 수출에서 얻는 이익이 마늘 수입으로 인한 농가의 손실보다 크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정부가 이익을 본 기업에서 세금을 걷어 마늘 재배 농가의 피해를 직접 보상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한 일은 중국에서 사들인 마늘을 저장해 주었다가 수출 보조금을 줘서 제3국으로 재수출하겠다는 것 뿐이었다. 국내 마늘 농사가 흉작일 경우 가격 안정을 위해 중국산 저장 마늘을 방출하겠다는 말은 물론 마음속에만 담아둔 채로. (-291-)
독서를 하면 , 어떤 책이 어려울 때가 있다. 책이 전문가용일 경우 특히 그러하다. 책 제목에 '원론','~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그 책을 읽기 전에 겁부터 먹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러한 전문 서적에 대한 해설서가 필요하다. 소위 유시민 작가는 그런 면에서 잘 만들어진 해설서를 다양한 책으로 쓰기로 익숙한 작가이다. 근현대사를 자기 나름대로 풀어나가면서, 책을 출간하였고, 유시민작가의 경제학 전공을 기반으로, 어려운 경제학을 일반인의 기준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유시민 작가의 강점은 어려움을 쉽게 풀어내고, 그 안에서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IMF가 터지고 난 뒤, 2002년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를 출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경제와 사회를 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러드 벤담의 공리주의 뿐 아니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바라본 경제와 실물 경제를 엮어내는 차별화된 경제학 해설서를 보더라도, 그가 작가로서 보여준 일관성은 독자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특히 이 책은 IMF를 자주 논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고점에서 갑자기 꺾인 사건이 IMF 부도 사태이다. 영화로도 나왔던 그 사태는 국가의 금융과 경제를 흔들었고, 기업과 금융이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20년이 지났지만, IMF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개개인이 은행에 대출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국민정서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히 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냉철한 분석,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이유, 인간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이면서, 결코 경제학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제의 주체인 기업과 국가가 결정적인 순간에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IMF도 그러하였고,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인해 국가 경제가 흔들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축은행의 부실, 더 나아가 코로나 19 팬데믹도 마찬가지이며, 한미 FTA 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한국 경제의 근간인 수출과 수입에 대해서 금융정책 변화의 당위성을 제시한다. 그 하나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를 이해한다면, 국가가 스스로 국가 경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개인의 각각이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경제학적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국가가 결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개인을 담보로 ,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근본에 경제가 있고, 국가가 있으며, 개인은 그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