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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자를 만날 시간 - 숨 고르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석한남 지음 / 가디언 / 2021년 4월
평점 :

노자는 정상이 아닌 골짜기의 미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는 풍요롭고 포근합니다. 골짜기는 넉넉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입니다
노자는 '낮고 부드러움' 이 '높고 강함' 보다 위대하다는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10-)
덧붙여서,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진다는 뜻의 '다언삭궁(多言數窮)'은 가장 절묘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구절입니다. 제 경험으로 본다면, 매사 무덤덤하거나 다소 음흉한 사람은 말 때문에 후회할 일이 적었지만, 밝고 친화력 뛰어난 사람은 꺼져가는 분위기를 혼자 살리려다가 말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직 생활에서도 모두가 어려워서 말을 꺼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조직 생활에서도 모두가 어려워서 말을 꺼내지 못할 때 비장하게 나서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전문 용어로 '총대 메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총대 멘'사람의 비극으로 끝납니다.(-50-)
굽은 것 속에 온전함이 있고, 구부림 속에 곧음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우묵하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며,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온전함을 구하는 최상의 도는 다투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123-)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지키면 세상의 골짜기가 된다.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참 덕'에서 떠나지 않고 갓난아이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142-)
산책길에 갓 태어난 참새들을 만났습니다. 제 엄지손가락만 한 참새 한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아파 보이는 다른 참새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보고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실화냐고요. 같이 본 사람도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저는 제 어휘사전에서 '새대가리' 라는 말을 지웠습니다.(-184-)
큰 그릇은 더디 이루어지고
큰 소리는 소리가 희미하며
큰 모양은 형세가 있으니
도는 은미하여 아픔을 지어 부를 수 없다.
오직 도만이 잘 베풀어 이루어지도록 한다. (-197-)
심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쓰게 되고,
많이 쌓아두면 꼭 크게 잃게 된다.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 (-210-)
<노자>는 크게 이룬 것은 마치 모자란 듯, '대성약결 大成若缺'하고 가득 찬 것은 마치 빈 듯, 즉'대영약충(大盈若沖)'하다고 했습니다. (-214-)
남의 불행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것을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라고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쓰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소득이 아주 높은 사람 중 대부분은 그 돈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심지어 그 많은 돈을 두고서 하고 싶은 사랑도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먹지 못하는 상태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221-)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날지 못한다.
이 말은 내가 노자에게서 들은 것이라네.
만약 노자가 도를 알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오천자나 되는 <노자>를 지었겠는가?
촌철살인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267-)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은 창자를 썩게 만드는 약이다. 잘 꾸민 방과 시원한 집은 한기와 열기를 부르는 중개자이다. 나고들 때 타는 가마와 수레는 다리를 거꾸러뜨리는 기계이다. 하얀 이와 고운 눈썹의 아름다운 여인은 천성을 해치는 도끼이다. (-303-)
'세가지 보물' ,즉 '자애로움, 검약, 그리고 감히 나서지 않음'은 노자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노자는 이 중에서 특히 자애로움을 강조했습니다. 처참한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살았던 노자가 예찬한 덕목은 바로 자애로움이었습니다. (-324-)
'피갈회옥(被褐懷玉)'은 지혱롸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로 널리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 왕필은 피갈회옥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거친 베옷을 입는다' 는 것은 세속과 같이한다는 뜻이요,'옥을 품는다'는 것은 그 참된 본성을 보배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336-)
깊은 원한은 화해하더라도 남은 원한이 꼭 있게 되어있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해도 어찌 잘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좌계를 쥐고 있어도 사람을 다그치지 않는다.
덕이 있는 사람은 계약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덕이 없는 사람은 세금을 받아낸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이 하는 법이 없이
언제나 선한 사람과 함께 한다. (-380-)
노자 사상은 5000여자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노자의 삶과 생조차 알지 못한 채, 춘추시대를 살았음을 기록 안에 짐작할 뿐이다. 중국은 여러 나라로 쪼개졌고, 전쟁이 반복되었다. 권력의 쟁투,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조건들, 생존 기술조차 얻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노자는 덕과 지혜를 강조하였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말 것을 강조한다. 비우면 채워지고, 채우면, 비워야 한다. 지금의 현대인의 시선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메시지다. 하지만 2000년 전 춘추 전국시대로 돌아간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즉 덕과 지혜를 가진 이는 세상에 도드라질 수 있고, 자신의 생을 안전으로 바꿀 수 없다. 지금의 세상과 너무 다른 중국의 고대에서, 자신을 감추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정상에 서 있기보다, 낮은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나름대로 생존기술을 키울 수가 있었다. 죽음 안에서, 삶을 추구하고, 삶 속에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위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그 시대에,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스스로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숨고르기를 하는 것,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자가 더 크게 쓰여질 수 있고,화를 면할 수 있다. 그게 노자 사상의 본질이며, 도와 덕을 추구하면서, 삶을 가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