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 - 도시에서 사일 시골에서 삼일
한순 지음, 김덕용 그림 / 나무생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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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한 번 내릴 때
우리도 한 번 착해지고
봄 새순 고개 내밀 
묵은 감정에 숨구멍 생기면 좋겠다. (-10-)


허무와 그리움 사이에 핀 진달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찍힌 흔들리는 꽃도장이다. (-19-)


햇살에 봄 들어 있다.
나무들이 
봄 몸살을 시작하려 겨울 가지 주변에 
붉은 아우라를 씌운다.
저 자비하고
무자비한 순리,
웅숭웅숭 소곤소곤
빛 속에 숨은 생명의 씨
깊이 잠든 바위를 두드린다.
햇살의 깊이로

톡톡! (-27-)


상추까지 곁들여진 푸짐한 저녁식사는 엄마를 행복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세 남자의 젓가락질이 빨라지면, 가끔씩 그 광경을 쳐다보며 엄마와 나는 웃음을 나누었다. (-51-)


"실수" "수줍음" "자기답게 보이기" "올바른 생활로부터의 자유" "무능함" "어리석음" "부와 명성으로부터의 자유" "일단 당신 자신과 화해하라 , 그리고 기억하라. 가장 완벽한 순간은 대개 가장 불완전한 시간에 만들어진다." "완벽할 필요 없다" (-63-)


욕심은 제 모습이 부끄러운 줄 알아 변방술에 능하니
한밤 깜깜한 어둠 속에
나직이 불러 차 한잔 할 일이다. (-116-)


언제부터인가 중간에 잠이 깨 행하는 의식 같은 것이 있다.

세상의 무엇들과 사이를 두는 일

북한산과 자동차 소음과도 나를 둘러싼 물건들과

너와 나의 호홉이 깃들수 있는 공간을 두는 일

사이를 넓히는 시간
애착이 풀어지는 시간
새벽 3시 (-159-)


신념이 확 무너져 내릴 때 인간이 자연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내려갈 때
소리 한 번 치려고  
겨울 강가에 다다랐으나
겨울 강도 입을 다물었다
네모난 책처럼
강물이 풀려
한 글자, 한 글자 물처럼 스미는
책을 좋아했다
책 동네에 산 것이 참 다행이다. (-195-)


"어느 공간이든 가지고 있는 것을 반으로 줄여야 해,"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 물건을 밖으로 내놓는 일, 빈 공간을 많이 만들수록 물건이나 사람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백의 공간으로 진정한 복이 깃들 것이다. 하나를 보아도 명확하게 볼 것이며 깊이 볼 것이다. 물건 하나를 살 때면, 집에 있는 물건을 내놓을 각오로 사야 한다. (-209-)


도시의 삶은 시골의 삶과 다르다. 고향 청주 무심천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던 작가 한순 님은 (주)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이다. 1960년생,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이제 환갑을 넘어서서, 나이가 꺽이는 그 순간, 서울살이에서 벗어나 시골살이로 전환하게 된다. 자연 속에 '삼한사온'이 있다면, 저자에게 '삼한사온' 이란 시골과 도회지의 삶을 오가는 삶이 아닐까 생가해 보게 된다.삶의 균형과 조화로움,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죽음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그 순간이 다가오게 되었다. 자연 속에 보이지 않는 때가 도시에 있는 것처럼, 도시 속에 보이지 않는 때는 자연 속에서도 현재하고 있었다. 사람과 공존하고, 빈틈을 만들어 내는 것,빈틈은 복을 불러들이는 의도된 여백이었다. 의도적이지 않아도 의도된 채로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것이 시골살이의 고고한 특징이었다. 내 눈앞에 삶과 죽음이 순환되는 지켜본다는 것은 삶의 지혜이며, 살아가는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연에는 사계절이 있고,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었다.도시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자연과 달리, 자연에서의 자연은 동물과 인간의 삶의 조화로움에서 잉태되어졌다. 스스로 지은 시골집 , 집안에 빈틈에 자연이 깃든다는 것은 도시에서의 자연과 차별화할 수 있다. 원칙과 절차보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도시의 자연의 모습은 사람을 숨막히게 한다. 반면 시골에서의 자연의 삶은 원칙과 절차에 벗어나도,다시 원칙과 절차로 회귀할 수 있는 회복 능력이 있었다. 어쩌면 도시의 사일 간의 삶이 현실을 위한 삶이라면, 시골에서의 삼일간의 삶은 저자에게 나만의 삶,이상을 추구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현실과 이상의 공존이 저자의 삶에 느껴지게 되었으며,비움과 느림 속에 나만의 고유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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