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디큐어
최세운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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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연기 속에서 웅크린다. 우리의 침은 마를 때 소리가 난다. 젖은 귀로 듣는 새벽, 아버지의 방언은 무서운 바람 같았다. 무른 뼈들이 밀려간다. 


창밖에서 거대한 동공이 깜박인다. 눈동자로 숨을 쉬는 아버지를 탁자 위에 놓는다. 커튼을 치고 눈을 감는다 잠깐이면 돼요 움직이지 말아요 아버지의 등을 그릴 때 긴 속눈썹 하나가 내 목을 감는다 아버지의 기침이 터진다 공중에서 버둥대는 두 발을 본다. (-20-)


제니

자살에 성공한 나느 바닥에 떨어진 클립들을 보고 생각합니다. 클립의 반짝임이나 타원형의 방식에 관해 그 안에서 구부러지는 사소한 가족들의 손에 대하여 그중에 한 명의 샌들이 떠올랐고 클립들의 짝을 맞춰줬어요. (-30-)


기쁜 노래를 불러보자 비스킷 비스킷이 되는 노래야 손목이 묶여지고 있었니 솜으로 소독되고 있었니 오른쪽으로 조여지고 있었니 네 눈금들을 하루 종일 찾았어 허공에서 벌떡 다리를 차는 경련은 오른쪽 울타리를 투과하는 양처럼 하루치의 량처럼 (-57-)


도도

도도는 가까운 미래를 열고 도도를 노래해 작은 얼굴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도도 도도는 너무 바쁜 진행형 도도는 실전 같은 현재형 도도 안에서 도도 밖으로 도도를 끌어안으면서 오바가 무너지기 쉬운 부분에서 도도는 옆으로 도도는 옆으로 도도를 열고 도도를 기념해 제대로 된 동작으로 테이블을 해석해 슬픔으로 폳장된 꽃다발은 오빠를 추모하면서 도도는 옆으로 도도는 옆으로 도도 안에 가득한 손을 잡고 도도 나 부르자 미안한 시간을 보내고 오빠의 증상들을 기록하면서 하루 종일 안녕들을 마주하자 도도는 슬픔을 느끼고 도도는 다리를 모으지 오빠에게 알맞은 미래를 고백하면서 불필요한 예감과 완치되는 가설로 오빠는 도도 안에서 그만 잠이 든다 오빠에게서 나무숲이 태어나고 철새들이 이동하고 오빠는 새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도도 조금 더 태어나고 싶어 도도 도도는 드러난 뿌리들에 자주 넘어지면서 도도를 부르고 도도를 노래해 확실성의 부분과 벽면의 견고함을 기대하면서 도도는 옆으로 도도는 옆으로 도도 안에 이어진 도도 밖으로 햇빛들이 조금씩 도도를 채우고 도도는 오빠의 창백함을 뒤로 숨기면서 도도에게 걸어가 도도에게 노래해 가까운 미래가 열리고 작은 얼굴들이 태어나고 모서리가 다 잦은 오빠 옆에서 도도는 오빠의 경련하는 안녕들을 흘리며 도도 (-79-)


소설가는 소설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고, 동화작가는 동화속에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아낸다. 에세이리스트는 에세이를 통해 내 안의 경험 속에 감춰진 희노애락을 텍스트로 넣어 채우면서, 의미와 가치를 독자에게 부여하게 된다. 가수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깊은 내면을 사람의 마음과 공명하게 된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무엇을 담아내고자 하였던가, 시인는 자신의 시가 가장 큰 무기이다. 그 무기를 가장 잘 활용하는 이는 시인으로서 가치를 충족시키게 되며, 시가 보편적르로 추구하는 틀, 함축적이면서,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무언가를 글로 표현함으로서 시상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에는 기존의 정형화된 시에 대한 기준을 파괴하려는 속성을 지닐 때가 있다.학교에서 배웠던 시의 정형화된 틀, 그 틀에서 벗어난 시가 최세운의 <메디큐어>이다. 


2020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한 최세운의 시집 <페디큐어>는 상당히 불편하다. 그리고 어렵고 난해한 문체로 되어 있었다. 자간과 행간이 사라지고, 미사여구도 없이 마침표 ,쉼표도 불분명한 채, 자신의 시상을 담아내고자 하는 실험성이 깊은 시를 구현하고 있었다. 교과서에 없느 시의 파격, 죽음과 누군가의 불행, 실패의 끝은 죽음인가 싶을 정도로 그의 <페이큐어>는 우울하고, 실패이면서, 실험정신이 돋보였다. 희망도 꿈도 느껴지지 않은 글루미GLUMMY 스러운 시, 사람의 깊은 내면의 우울함을 끌어내고 또 끌어올리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내 안의 불편함을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인간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반복과 순환을 시의 텍스트로 완성하게 된다.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깊이 느끼게 되었다. 왜 작가는 시의 제목을 <페디큐어>라고 썼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시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 스스로 지워지지 않은 질문을 하게 된다. 기존에 우리가 생각했던 페티큐어에 대한 선입견,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바꿔 나가려는 인간의 의도를 이 시를 통해서 거부하고, 시에 대해서 저항하려는 제스처가 돋보였으며,내 안의 깊은 노여움과 분노, 불안과 걱정,죽음에 대한 발자취, 삶과 죽음, 태어남과 사라짐, 생성과 소멸의 자취, 억울한 삶의 근원을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깊은 의도가 도드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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