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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것들
사과집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4월
평점 :
그러나 나의 아빠는 '조용한 순간'을 갖지 못했다. 합병증 환자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업무 중에 사망한 남자에게 삶을 고찰할 '조용한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아빠가 삶을 관조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 속에서 어떤 사람은 더 빨리, 더 아프게 죽는다. 어쩌면 삶을 고찰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은 아닐까. (-9-)
얼마간 그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아빠의 유골함을 안고 졸았다는 사실이, 아빠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나? 나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인가? 나는 애도의 우선순위 따위를 모르는, 사회화가 덜 된 인간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과연 나 하나일까? (-32-)
방을 정리하며 아빠의 사생활과 단숨에 마주쳤다. 체크카드 기록이 적혀 있는 통장, 내가 볼 필요가 없넜던 낙서와 영수증, 그곳엔 언젠가 내가 아빠 생일날, 딸로서의 부채감에 썼던 생일 축하 카드도 있었고, 내 대학 시절 성적표도 있었다. 미처 온라인 수령으로 바꾸지 못해 집으로 간 성적표였다. 아빠는 대학 간 딸의 A 몇 개에 내가 성적 장학생이라도 되는 것마냥 주변에 자랑을 하고 다녔다. 출입국 도장이 한 번도 찍히지 못한 여권도 있었다. 몇십 년 전에 만들어진 여권이었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난 적 없던 아빠는어쩌다 이 여권을 만들었을까. 아빠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있었을까. 여태껏 궁금해한 적도 없던 질문이 아빠가 떠나고서야 치솟는다. 죽은 사람의 방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사용기한이 만료된 질문과 수없이 마주하는 일. (-63-)
"너희 아빠가 사람은 참 잘 챙겼어."
"욕은 잘 해도 화통한 사람이었다."
"네 아빠만큼 경조사에 잘 참석한 사람도 없지."
"집에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밖에서는 참 잘했다." (-120-)
깨끗하게 삶을 떠날 권리가 부자에게만 용인되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해본다. 그 세계에서는 더 복잡하고 악랄한 형태로 가난한 자의 사후가 잡혔을지도 모른다. (-162-)
아빠의 죽음 이후 나는 나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서른이 넘은 나이에 신입 공채를 준비하며 불안 증세는 심해지고 자신감은 옅어졌다. 그런 나의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것은 모순적이지만 탈락 이후를 준비하는 일이었다.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짓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원고를 쓰고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초등학교에 진로 강연을 나갔다. 특정회사나 직업이 아니더라도 나를 설명할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194-)
나 역시 가치관에 따라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할 상황, 이를테면 뇌사나 식물인간 상태에서는 의사나 가족의 입장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의견과는 무관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충분히 원하는 바를 고려하고, 가장 좋은 선택을 내버려준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나의 선택은 존중받을 수 있다. (-203-)
대한민국 사회는 솔직하고,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할 때, 솔직한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야 할 때, 왜 익명을 쓰거나 , 닉네임을 써야 하는 걸까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다. 왜 나의 이야기를 쓸 때,독자는 그 글에 대해서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 틀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예를 들자면, 행복이라는 주제로 책을 쓸 때는 나의 이름을 내새워서 쓰게 되었다. 반면 불행을 주제로 책을 쓸 때는 익명으로 고쳐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도 익명으로 쓰여진 이유, 작가가 앞서서 썼던 책 <싫존주의자 선언>, <공채형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만든 도덕적인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난하고 비판하려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있었다.하지만 이런 부류의 책은 더 많은 공감을 얻게 되고, 그 안에서 나의 삶과 밀접한 부분들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매순간 치열하게 삶을 생각한다. 그러나 삶에 대해서 치열하게 생각하는 것 만큼 죽음도 항상 마주하게 되었다. 기쁨과 행복, 이해, 공감, 아픔과 슬픔이 교차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나의 삶 속에서 죽음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졌는지, 작가가 마주한 죽음에 대한 경험 속에 나의 삶,나의 죽음이 있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빈자리가 남게 되고, 장소와 공간,흔적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놓여진 문제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작가가 마주하였던 아빠의 흔적 속에는 딸로서,작가의 어릴 적부터, 최근까지의 흔적과 보존들이 있었다. 즉 주인이 떠난 그 빈자리에 대해서 살아있는 이들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고, 아빠의 흔적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감정이 교차되는 것이었다. 아파야 한다는 것, 슬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 하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상의 죽음이 아닌 실체의 죽음, 죽은 이의 과거에 대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알수 있으며, 죽음이후,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내 삶을 고민하게 되었다.빨로서 작가가 생각하는 아빠에 대한 기억들, 아빠가 남겨놓은 물건에 대해서, 아빠의 꿈을 이해하게 되었고, 질문을 하게 된다.아빠가 자랑스러워 하였던 딸에 대한 흔적들을 보존하였던 아빠의 마음을 느낀 작가의 생각을 느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