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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문 ㅣ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평점 :
나는 주머니를 다시 속치마 안에 매달고 백주가 일하는 주막으로 향했다. 백주가 주막을 떠나기 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다. 시구문 초입 기를 지나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면 백주가 일하는 주막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다. (-15-)
백주는 어머니의 죽음을 백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백주의 어머니는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 팔삭둥이로 어렵사리 백희를 낳았다. 그날 어머니의 산바라지에 쓸 나무를 하러 겨울 산에 올랐던 백주는 발을 헛디뎌 산을 구렀고, 아무 소득도 없이 다친 몸으로 돌아왔다. (-47-)
평상 위에 작은 상이 여섯 개나 놓여 있었다. 나는 상을 받아들고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틈틈이 아씨를 찾았다. 하지만 아씨는 어디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집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그랬다가 뒷말이 나올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는 사을 들고 가는 내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116-)
"아주머니, 신당골로 가는 길에 창수 주막에 백주라는 아이가 있어요, 오늘 밤 이곳으로 와달라고 꼭 전해주세요."
동구 아주머니가 적정하지 말라며 지키고 있던 아궁이를 떠났다. (-136-)
나도 죽으면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나조차도 모르겠지? (-176-)
살아가는 내내 기억해야 했다.앞으로의 삶이 힘들더라도 , 우리에게는 우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기꺼이 문밖의 길을 내어준 어머니와 백주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기꺼이 문밖의 길을 내어준 어머니와 백주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제 문명이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닌, 내가 운명을 이끌어보겠노라 다짐했다. 두렵지 않았다.나는 손에 힘을 주고 두 사람의 손을 꼭 쥐었다. 마주 잡은 서로의 손에 따듯한 온기가 고여 있었다.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새싹의 생명력이 발아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에 이미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180-)
삶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다. 누군가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고, 살아남은 이는 삶을 견뎌야 했다. 소설 <시구문>에서 시구문은 역사속에 현존하였던 관청이자 문이었지만, 이 소설에서 시구문은 삶과 죽음이 드나드는 통로이자 삶이면서,인생이었다. 소설에는 무당의 딸로 살아가는 송기련이 있다. 소설에서는 시구문 앞에서 삶을 연명하는, 슬픔을 이용하는 기련이 나오고 있으며,기련의 친구 백주는 그런 기련의 삶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백주에게는 동생 백희가 있다. 어머니가 없이 자란 두 자매는 창수 주막에서 몸을 팔고, 술을 팔아가면서, 삶을 연명하게 된다. 두 사람 앞에 또다른 인물 소애 아씨는 ,명문가의 자손이지만, 역모로 인해 하루 아침에 몰락한 양반 가문으로 전락하게 된다. 소애 아씨 집안은 서서히 몰락하였고, 가문의 일원은 서서히 참수되고 말았다.그런 소애 아씨 집안의 몰락을 지켜 보는 백주와 백희 자매, 그리고 기련의 운명적인 삶은 명청 교체기였던 조선시대에서,격변을 견디는 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소설은 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누군가 죽으면, 그 죽음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물어보게 된다. 죽음 이후의 또다른 죽음이 시구문을 통해서, 통과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엿볼 수 있다.소위 가족을 어머니를 잡아먹었다는 낙인을 찍어버린 채 살아가야 하는 백주와 백희의 삶,그러한 삶은 지금은 억울하지만, 그 당시에는 억울함을 누군가에게 풀 수 있는 길이 없었다.시대의 변화 속에서 조선의 명문가 가문이었던 조선의 갑이었던 양반은, 하루 아침에 물락한 양반 가문이 되어야 하는 을의 신분으로 바뀌는 주인공의 비참함을 엿볼 수 있었다.그 안에서 죽음을 기록한다는 것은 비극 속에서 희망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가의 생각과 역사에 대한 인식, 삶에도 의미가 있지만, 죽음에도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한 편의 슬픈 소설이다.죽음을 목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견디는 것이 나은 삶일까,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삶이 나음 삶일까 깊이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