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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 - 현안 스님의 미국 찬禪 메디테이션 이야기
현안 지음 / 어의운하 / 2021년 3월
평점 :
막상 정말 타고 싶은 차를 사서 타고, 또 돈도 충분히 벌어서 아무 것이나 다 살 수 있게 되니, 특별히 좋은 것이 없었다. 내 스스로 성취한 것을 자랑스럽게 느낄 때, 또는 돈이 많으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내 이상만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수행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매년 수행으로 변해가는 내 몸과 마음을 알게 되니, 번뇌가 올라올 때면 더욱 수행에 몰입하고 싶어졌다. (-14-)
우리가 큰 지혜가 생기기 전에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간섭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도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셨다. 수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워낙 화가 많고 성격 급한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예의에 맞고 맞지 않은지를 배우면서 지났기 때문에, 이런 상황 때문에 번뇌가 더 많이 생긴다. (-72-)
"무슨 일을 하든 방해받지 않고 전적으로 그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142)
그러니 마음에 잡 생각이 너무 많으면 마음을 단전에 모으세요. 그래도 너무 잡 생각이 많아서 계속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기 어려우면, 마음을 하나로 모을 주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나무 아미타불'을 외우세요. 잡 생각이 날 때 그렇게 염불을 하면 그 여섯 글자에 마음을 집중할 수 있으니 아마 병상하기 훨씬 더 수월해질 거예요.이건 종교와 관계없는 명상 테크닉이니 한번 해보세요." (-201-)
한국 사람들은 아무런 지적을 받지 않아도 이미 실수하지는 않았는지,예법에 어긋나지는 않았는지, 뭘 잘못한 건 아닌지 스스로 염려하는 경향이 있다.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아도 이미 이렇게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는데 , 더 많은 번뇌를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262-)
살아간다는 것은 견딘다는 것이 강한 의미를 지닌다. 어릴 때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을 견디고, 어른이 되어서는 세월을 견디게 되면서,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였다. 세상이 만든 규칙과 예의에서 자신의 삶이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불만은 층층히 쌓에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번뇌가 생기고 망상에 빠지게 되면서,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적 자유를 갈구하게 된다. 그런데,그것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예기치 않은 일들이 나를 옥죄는 경우가 많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었고,나에게 어떤 삶을 살아아갸 할지 고민하게 된다. 경제적 자유를 얻고, 사회적 명예도 얻었지만, 결코 느끼지 못하였던 그 무언가가,자신의 삶과 엮일 때가 있다. 바로 이 책에서, 사업가에서 스님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안스님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하나 하나 들춰볼 수 있었다.그리고 그안에서 나의 문제를 알게 되면서, 나의 문제를 풀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게 된다.
이 책은 마인드 풀니스, 즉 내 마음챙김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결코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저자의 결필과 집착의 근원, 사업가로서 일찍 성공하였고,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행복과 만족의 전부가 될 수 없었고, 자신의 욕망과 이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즉 세상은 현안 스님을 보면서, 부족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현안스님은 내 안의 불만과 불신,걱정과 번뇌를 스스로 풀지 못하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불교의 수행법이다. 스스로 명상을 통해서,참선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극복해 나가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 자세가 도드라지고 있었다. 나에 의한 삶, 너에 의한 새로운 가치관, 그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저자의 삶 속에 묻어나 있었다. 하루 한 시간 결가부좌結跏趺坐 를 통해서 , 스스로의 고통과 괴로움,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현재를 살아낼 수 있었으며, 타인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현재에 주어진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즉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했던 그 가치를 저자는 실천하였고, 그 안에서 경제적 자유와 삶에 대한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행복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