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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생각들 - 오롯이 나를 돌보는 아침 산책에 관하여
오원 지음 / 생각정거장 / 2021년 3월
평점 :
산티아고 순례길은 800킬로미터.내가 걷는 하루 1시간의 산책길은 보통 3~5킬로미터.산술적으로 나는 365일의 산책을 통해 (때때로 게으름을 부리거나 어쩔수 없는 날들을 다 빼더라도 300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다. (-17-)
내 삶의 조각은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조각으로 다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산책길에서 튀어 들어온 타인의 조각들을 '나'로 명명된 숫자로 발견했다. 꽤나 많은 숫자 속에 내 조각 역시 누군가의 삶 속에 튕겨져, 이제는 그 또는 그녀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62-)
"한 도시를 아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도시의 사람들이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꽃'을 바라볼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금전적으로든, 마음으로든. (-123-)
젊고 건장한 모습으로 세상 모든 것을 다 만들어주고 가져다줄 것 같았던 그의 손의 촉감을 기억한다. 반면 그날 마지막 ,손을 잡고 걸을 때 그의 손은 앙상하고 한없이 거칠었다. 발을 맞춰 걷는 것이 힘들었다. 우리는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멀리 갈 수 없어서 겨우 동네 한 바퀴를 걸었는데, 그에게 집 밖 산책은 해외여행보다도 멀고 힘든 시간이었다. (-181-)
시대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지 못하였다.소수의 한국인들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게 되었다.내가 걸어다는 걸음 걸음 누적거리를 계산할 수 있는 모바일 앱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가치와 존재들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었다. 그 없었던 것들을 있는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다른 생각이다. 남다른 생각의 힘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빌게이층가 추구했던 걷기이다. 산책을 하고, 산을 걸어다니고, 내 동네를 걸어다니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삶의 의미가 된다. 걸어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순간 우리의 일상은 뒤짚어질 수 있다. 걷는 것은 삶의 기본이면서, 건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걷기의 효용성과 실효성을 얻게 된다.
걸어다니게 되면, 자연스럽게 느린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여유로운 삶, 비어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걷기를 생존이 아닌 삶으로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질문하게 된다. 일반적인 걷기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였다.그 질문에 대한 긴 여정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서로가 필요하고, 연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그것이 걷기를 통해서 느끼고, 생각하고, 연결시킬 수 있다. 단절된 사회에서 놓치고 있었던 추억들, 기억들을 주섬주섬 담아가게 된다.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별개의 삶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삶이 타인의 삶의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나의 삶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그 순간, 인간의 삶은 오만해지고, 자만심에 빠져들게 된다. 즉 이 책을 통해서, 걷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겸손과 삶, 그리고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