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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
에밀리 파인 지음, 안진희 옮김 / 해리북스 / 2021년 3월
평점 :
불임과 알코올중독 , 여성의 몸, 가족 갈등 같은 문제들을 둘러싼 침묵을 깨뜨려 주었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러한 침묵이 어떻게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15-)
최후통첩(술을 끊으세요) 과 전적인 수용(어떤 일이 있든 당신을 사랑해요) 사이에 사로잡힌채로, 중독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나날이 다 소진했다가 새로이 다시 시작한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아빠를 거부하며 그의 곁을 떠났지만, 매번 실패했다. (-38-)
더는 '노력'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예전생활로 돌아가고, 우리에게 아기가 없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애쓰면서, 나는 결심을 뒤흔드는 순간들과 몇 차례 맞딱뜨린다. 어느 날, 나는 옷장의 바닥에 숨겨둔 남은 임신 테스트기와 임신 관련 서적들을 처분하기로 마음먹는다. (-107-)
나는 \내 몸에 혐오감을 느끼던 십 대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고작 열 세살의 나이에, 내 몸에 셀룰라이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이 사실을 나 자신이 싫은 이유 목록에 추가했던 기억 또한 떠올랐다.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평생 힘겹게 벌여왔던 모든 전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154-)
정상적으로 먹기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집에 전신거울을 두지 않고 살고 있다.나는내 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인정하면서도 나는 이 사실이 정말 싫다. 이 사실이 내 회복 감각을 약화하는 것이 싫다. (-213-)
우리는 행복을 원하고, 행복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와 존재가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간들, 삶의 의미를 행복에 두는 이유는 그래서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쓸 때, 행복한 모습만 담아내려하고, 실제 현실 속에서의 부끄러운 자화상, 부정적인 것들을 거부하려고 한다. 반쪽 짜리 인생만이 기록되어 있으면서,그것이 전부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아일랜드 국립 더블린 대학교 현대극 전공 부교수 에밀리 파인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기록해 내고 싶었다. 긍정적인 것은 다른 책을 통해 자세히 나와 있으니,자시느이 부정적인 삶을 통해서 위로와 공감을 얻기를 바라는 저자의 고민과 의도,목적이 묻어나 있다.
이책에는 알코올 중독에 걸린 아버지, 임신과 출산,육아를 꿈꾸는 에밀리 파인,그리고 가족갈등이 세밀하게 드러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완벽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되며,그안에서 자신만의 오만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소위 이 책이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책이 아닌, 한국에서 출간된 책이라면, 출판사에서 반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한국의 출판 환경은 제한적이고, 주제와 소재도 재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며, 서로 언어적으로 통하지 않지만, 소통과 공감,이해의 가치를 고스란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어기를 꼭 가지고 싶었던 에밀리 파인,하지만 스스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말았다.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저자의 삶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그녀의 삶, 나의 삶과 너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 저자가 2년에 걸쳐서 용기를 짜내었던 이유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서 얻게 되는 세상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다. 하지만 스스로 인정함으로서, 자신의 과거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고, 주변에 주어진 인생에 대해서 ,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즉 용기와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