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불안에게
이원영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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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삶에 던져진 화두는 '불안'이다. 성장기부터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불안을 애써 잊고 살다가, 불안을 다시금 인식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이십 대 후반 처음 겪었던 고소공포증이 그 시작이었다. (-11-)


고독(solitude)은 주체적인 자아에 필요한 '자발적 격리'지만, 외로움(loneliness)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당하는 자아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고독사 등의 어휘로 인해 어감이 와전된 경향이 있지만 한마디로 고독은 인간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57-)


가난을 정의하는 기준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내가 기억하는 간나은 장마철의 반지하였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 찾아오는 눅눅함에 움츠러든 몸은, 가난이 남긴 흉터와 다른 없었다.돌이켜 보면 밤새 물을 퍼내야 했던 피로감보다 가난 때문에 그런 일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이 더욱 서긆펐다. (-77-)


알 수 없는 내일엔 태생적인 불안이 깔려있다.내일 우리 동네에 어떤 괴상한 사건이 발생할지, 비보가 들릴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 것도 알수 없다. 조상들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문안 인사를 건네던 것도 겨우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이었으리라. (-119-)


절망의 언어는 직감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탓에, 서로가 어떤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저마다의 언어와 울음이 뒤섞인 버스는 별다른 방법 없이 파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170-)


스물 아홉 살의 나는 서른 살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서른'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다. 이십대의 10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제대로 복기할 시간도 없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거대한 과문을 넘어야 할 것 같았다. <서른 즈음에>노랫말이 그렇듯, 이십 대의 나는 빠른 세월 속에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듯했다. (-178-)


어느 순간 ,갑자기 불안이 엄습했다.컴컴한 밤에 묘지를 지나갈 때,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불안과는 차원이 다른 성격이다. 내 안의 불안은 오지 않을 듯 올 것 같은 그 불안이었고, 내 안의 예민한 정서는 그 불안은 증폭시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불안읔 내 안의 불확실성과 예측에서 시작되었으며, 내 안의 희망과 행복을 잠식시켜 나가게 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모호하며,애매하다.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면,내 안의 불안의 기제 조건들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삶이 불편한 순간으로 바뀌면,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과거 스마트폰이 없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우리의 불안이 숨어 있다. 스마트폰은 절대 잃어버리거나 없어지면 안되는 무생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스마트폰에 길들여지게 되고,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부서질까봐 만성적인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맞춤법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완벽한 맞춤법을 써야 한다는 강밥관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맞춤법 표기에 대해서, 자신의 나이나 교양이나 수준이 맞춤법에 노출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을 때 불안을 감지하게 되고, 회피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소유하고 있던 것이 갑자기 사라질 때 느끼는 불안은 내 시간을 서서히 잠식하게 된다. 있던 것이 없어졌을 때, 기존의 나의 습관들이 엉키게 될 때,내 안의 평화로움이 사라지게 되고, 불안이 출몰할 때가 있었다.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그 순간 ,불안을 느낀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거였다.저자도 그 순간을 느끼고 말았다.20여년 전 노래 <서른 즈음에>를 남겨 놓고 떠난 김광석, 그 노래는 내 삶의 근본이며, 불안의 요체였다. 나이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현실과 문제에 노출될 때,나의 나약함이 깊숙히 파고들 때 생기는 외로움이나 고독함에서 시작되었다.내 안의 또다른 나,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 자신, 내 주변 사람들과 사물들이 언젠가 떠날 거라는 생각에서 집착하게 되는 순간 불안을 스스로 학습하게 되고,그 학습된 불안을 주변에 전염시키는 주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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