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걷는사람 시인선 39
윤석정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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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먹은 독수리처럼 부리는 길어질수록 휘었고 발톱은 안쪽으로 말렸으므로 마흔은 나불거리거나 아무나 할 퀼 수 없다.

마흔은 사직서를 마음에 개켜 놓았고 처자식이 두텨운 날개였으므로 아무도 모르게 멀리 날아갈 수 없다. (-13-)


할머니를 이장하던 날
아버지는 세살 이후 할머니의 얼굴을 처음 만졌다

사진 한 장 없는 할머니가 기억나지 않아 
아버지는 얼굴을 더듬거렸다.

아버지는 그리운 얼굴의 노래를 불렀다.
울음이 없는 음정이지만 엇박자였다.

끝 모를 침묵이 어긋난 박자들의 끝음을 채웠고
아무도 원망할 수 없는 이별이 화음을 이뤘다. (-42-)


생生이 사死에 갇힌건지 사가 생을 가둔 건지
몸이 마음을 가둔 건지 마음이 몸에 갇힌 건지
눈물이 눈에 갇힌 건지 눈이 눈물을 가둔 건지. (-59-)


사월,그날의 노래가 바다에 퍼졌어요.바다에 없는 악기를 가진 것들은 아무리 들어도 들을 수 없고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노래 아닌 노래에 심취한 악귀였어요. 그것들은 아이들의 청아한 합창을 들을 수 있는 악귀가 사라졌지만 강철 갑판보다 두꺼운 입술로 열창했어요. (-93-)


인생 시였다. 시인 윤석정 시에는 우리의 희노애락이 있었다. 삶과 생이 서로 엮어 있음을 그의 시에는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시가 내 삶을 노래하고 있으며,그 삶에 대한 집착이 나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시인은 알고 있었다. 삶이 생이요, 삶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살아있는 자와 죽어있는자가 서로 정서적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인간이 동물과 차별화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슬퍼하고,기뻐하고, 애통해 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감정의 동물이었다. 시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뼈와 엮어냈다. 매장된 시신 ,뼈 조각조각에는 소중한 한 사람의 생의 모습과 흔적들이 있었다. 세살 이전에 본 적 없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어머니였다. 그것은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생에서 한번도 본적 없었던 뼛조각을 소중히 다루고, 그 뼛조각에서 흩어진 모래알처럼 지워지고 있는 기억들을 주섭주섬 담게 된다. 진정어린 행위 하나하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부르는 노래가 비록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뭐라할 수 없는 경건한 그 순간이었다.진실되고, 의미있는 행동은 무언가 이질적이어도, 어긋나도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각자각자가 위대하다.


마흔, 생의 가장 전성기이면서 ,생의 무게와 책임이 주어지는 나이였다.위기와 기회가 교차되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지만, 아무렇게나 휘두르지 않는다. 독수리는 멀리 날아가고 높이 날아아고 싶어도, 양어깨의날개가 무거워지는 시점이기에 높이 날아갈 수 없고,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시인은 우리의 인생을 독수리의 형체에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소위 독수리의 노화를 인간의 나이와 삶과 엮어낸다. 삶이 죽음을 가두고,죽음이 삶을 가두는 그 순간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깊은 관찰과 상징과 은유로 채워나갔다.세상에 대해서 많이 보고,많이 느끼고, 자신이 가장 관심가지고 있었던 주제와 소재와 엮어 나가게 된다. 그 엮여짐의 깊이가 농밀해질 때, 나의 삶을 나의 눈으로 보았던 관찰을 통해서 시인의 시 구절 속에서 독자는 깊은 울림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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