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이 사는 골목 푸른도서관 84
김현화 지음 / 푸른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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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기라는 말은 태워서는 안 되는 거야. 그 말은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말이야.그 말에 맞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거든. 잘못된 말이 아니야. 이호 그 자식이 쓰는 것처럼 비하하는 뜻도 아니고 모별감을 주는 뜻고 아니야.상처를 주라고 있는 말도 아니야.내가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어. 거기에 튀기가 나와.인종이 다른 구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다른 말로는 혼혈아." (-14-)


"야. 택시 타이어 안 터졌냐?"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이호 녀석 뒤에는 언제나 두 녀석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32-)


은형이는 여전히 앵두나무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골목의 가로등에 노랗게 불이 들어왔다.닙집마다 유리창 너머 환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은형이네 집만 짙은 어둠에 눌려 있었다. 선웅이는 방 불을 내렸다. 혼자만 환한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70-)


"따로 떼서 숨겨 둔 돈 있잖아."
은형이다 더 참지 못하고 나섰다.
"방바닥 장판 밑에 숨겨 둔 돈까지 전부 가져갔잖아. 기억 안 나?그 돈이 어떤 돈인데."
"은형아,그만해." (-81-)


쉬는 시간에는 또래 아이들이 읽지 않는 책들을 읽었다.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라든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정약용의 목민심서 와 같은 책을 읽었다.어려운 책 읽는 시늉하며 잘 난 척 한다고 비꼴 수 없었던 이유는 은형이가 전 과목에 걸쳐 전교 상위 등급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8-)


11월 28일은 은형이가 태어난 알이었다.진따나 아주머니에게 은형이 생일을 물어보느라 이틀간 진땀을 뺐다.친구가 되기느 했지만 그러자고 손도 모아서 파이팅도 했지만 은형이 앞에서만 서면 심장이 제멋대로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은형이에 관해서 묻는 것,은형이에 관해서 듣는 것,그 모든 일은 설레고 떨리는 과정이었다. (-187-)


은형이가 도로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선웅이는 재빨리 호루라기를 불었다.허공에 울리는 차갑고 날카로운 경고음 ,은형이는 그 소리에 인도 위로 뒷걸음질했다.선웅이가 급히 뛰어가 안심시켰다. (-220-)


동화작가이면서 소설가인 김현화님의 <기린이 사는 골목>은 우리 삶의 소수자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건 우리의 전형적이면서,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 뒤에 보이지 않은 골목 속의 사람들,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한의원 아버지 밑에 초고도비만인 선웅이의 모습, 그리고 태국인 엄마와 술주정뱅이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은형이의 삶, 마지막 그 두 사람앞에 의로운 아이 ,기수의 모습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한 삶, 아픈 사회의 모습을 반사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이었다. 혐오와 차별 속에서 말하지 못하는 기린과 같은 초식쵝동물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뒷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그중 은형의 삶이 눈여겨 보여지게 된다.


은형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소위 돈많고, 공부잘하는 금수저가 아닌 다문화 가정 속에서 느리게 성장한 아이였다. 태국인 엄마와 술에 취해 사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 배움과 지식에 갈급하게 되고,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이의 슬픈 우울감이 느껴지는 주인공이다. 탕진하는 아빠의 모습, 피땀흘려 돈을 조금씩 조금씩 벌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의 흙수저의 삶이 이런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픔 그 자체였다. TV 속의 행복한 다문화 가정이 아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다문화 가정, 자신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은형이 세상을 견디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었다. 


초고도비만 선웅이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원은형,이 두 사람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아이가 있었다.그리고 그 아이들을 혼내는 또다른 주인공 기수가 있다. 여기서 기수의 모습을 보면 ,멋있어 보이지만, 기수에게도 보이지 않은 아픈 삶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기수의 할아버지의 불행이다. 작가의 의도는 바로 여기에 나타났다. 청소년 소설임에도 음을함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고 있었던 이유다. 즉 이 책은 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비판만 하고, 들추어내기만 하고,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는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이 책을 펼쳐들고 마지막까지 불편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던 이유는 그래서다. 가정환경이 불행하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느걸까에 대한 질문과 답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서,책을 덮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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