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 - ‘척’에 숨긴 내 마음을 드러내는 시간
이주희 지음 / 청림출판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세월을 축내고 있나.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소외당하고 있나.'아는 형님'은 갭투자로 결국 건물주가 되었고,'아는 언니'는 자식을 명문대에 보냇고 회사동기는 고위 임원으로 승진을 했다는데,부러우면 지는거라는데, 당초 '남의 이야기'는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건가. (-32-)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 ,즉 지위재(地位財) 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연에서의 경험, 이웃과의 추억, 골목길의 산책을 잊은 채 마트, 백화점, 쇼핑몰에서 에누리 없는 거래를 하며 살아간다. (-71-)


기어이 오십, 꿈꾸기에 적당한 나이다. (-95-)


그리고 눈에 띄는 댓글 하나."지금이 아니더라도 자식, 아니면 그 자식, 아니면 그 자식과 자식들에게 대대손손 세상의 모든 행운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느님이 하지 않으시면 우리들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138-)


눈앞이 흐려지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비로소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그리고 나의 '죽음'을. (-185-)


이렇게 발하는 우리는 ,나는 이미 도도새인지도 모르겠다. 뚱뚱해져서 더 이상 날 수 없는 새.'변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생각의 방식과 행동을 바꾸어내라는데,입과 머리로는 '변화'를 외치면서 몸은 천적 없이 안락한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처럼 잔뜩 불어 움직일수 없는 상태라면 정작 적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변화는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고 움직이고 뛰어드는 것임을 나는 모르고 이웃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216-)


갑자기 훅 들어왔다. 나이 오십, 나이는 예고없이 내 앞에 놓여질 때가 있다. 열살과 스무살, 서른과 마흔, 그리고 오십 중년,우리는 중년의 자화상을 그려보게 된다. 사회의 허리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팍팍하고 ,부실공사 인생사를 절감하게 되는 그 나이, 숫자가 가져오는 존경심보다는 나일리지, 노슬아치로 불릴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중년은 아파도, 힘들어도,괜찮은 척,견뎌낼 수 있는 척하는 나이였다.그래서 우리는 뺄수 없고, 도망갈 수 없고, 속으로 곪게 된다. 그럼으로서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지만 , 열심히 해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점점 불안한 도도새의 자화상을 가지게 되었다.돌이켜 보면 우리 앞에 놓여진 오십이 불안으로 느꺄지는 이유는 세상의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경하고 있어서다. 몸과 마음이 어긋나는 그 나이, 과거의 20세기의 오십과 다른 지금의 21세기의 오십은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역행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오십이 가벼워지는 인생공부가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내 마음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로워진 상태, 내 앞에 놓여진 무게를 스스로 덜어내는 과정이다. 물질을 덜어내고,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 즉 남들에 의해서 강제로 덜어질 수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덜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삶의 애착과 물질적인 집착에서 스스로 내려놓고, 많은 것을 알려고 애를 쓰지 않는 것, 내가 아는 것을 머리속에 담아두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래서이다. 살아가면서 느껴야 하는 것들,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감사히 여기고, 누군가의 죽음을 자주 보아야 하고,수습해야 하는 나이 ,그래서 더욱 눈앞이 흐려지고, 점차 서글퍼지는 나이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