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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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마을은 다시 한번 정적 속에 깊이 가라앉고 ,여기저기 실개울 소리가 되살아나고 있다.안개처럼 아래에서 피어올라오는 소리는 몇 만 마리의 누에가 쉬지 않고 뽕잎을 뜯어 먹는 소리다. (-10-)


가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그림자 하나 없는 명월, 가을바람에 굽이치는 초원,그리고 거지 법사다. 흠집투성이 버파를 등에 멘 장님 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휘청이며 삭막한 황야를 헤메고 있다. (-67-)


온통 얼어붙은 호수의 감촉이 전류처럼 나를 꿰뚫고 ,사고력을 빼앗는다. 달은 더욱 차고 법사의 마음은 달보다 천배나 더 차다. 한파가 그대로 호수를 파고들어, 수평을 유지하지 못한 얼음이 소리를 내며 깨진다.그 조각들이 연달아 솟구친다. 법사는 여전히 눈 동굴에 틀어박혀 있다. (-107-)


갈매기들이 하나같이 나를 바라보고 았었고,눈초리가 차가워 어딘가 의미있어 보였다. 나는 차로 돌아와 먼지가 뿌옇게 이는 산길을 내력갔다. 조금 달리자 갑자기 눈앞의 수평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93-)


소설은 시각적인 의미에 집착한다. 시는 청각적인 의미에 치중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즉 내 앞에 어떤 것을 표현할 때,시가 보는 관점과 소설이 보는 관점은 서로 상반될 수 있다.그건 사진가가 찍은 사진 속의 어떤 장면이 그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바로 그 경계선에 놓여지고 싶었나 보다. 즉 시와 소설의 경계선, 그 두개를 연결하고 있는 작품이 시소설 <달에 울다>였다.


이 소설은, 아니 이 시소설은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저 황야의 들판 위에 거의 쓰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가 땅 속에 뿌리를 깊게 늘어뜨리는 것처럼,차가운 바람의 흔들림 속에 위태 위태하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즉 이 소설은 쓸쓸함과 고독함을 내포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다. 즉 소설 속 주인공,난에게 고독은 세상을 꼽씹는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그에게 놓여진 운명,그 운명을 견디기 위해서, 차가움과 쓸쓸함에 맞서야 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저지른 행동,그것이 소년에게 되물림되고 있었다.삶,그리고 죽음,그 경계선에서 주인고은 계절과 풍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추고 있다. 내 눈앞에 소설이 한 폭의 화폭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작가 마루야마 겐지 스스로 세상을 깊게 관찰하고,사람을 깊이 들여다 본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처럼,음을함과 ,우울, 차가움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지극히 내면을 들추어내는 견딤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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