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공주 대 검지대왕
신형건 지음, 강나래 그림 / 끝없는이야기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지족 전성시대

"참새처런 수다스럽다."라고
말하면 언젠가, 못 알아듣는 그런
세상이 올지도 몰라.요즈음
수다쟁이들은 입 대신에
손가락이 분주하잖아.버스에
지하철에 앉아서 서서 휴대전화
화면에 얼굴을 푹 빠트리고 입은 꾹
다문 채 쉴 새 없이 두 엄지를 
움직이는 저 언니 형아들 좀 봐.
길거리를 걸어가면서도 한순간도
손가락을 멈추는 법이 없지.
언제 어디서나 자유자재로 두 엄지를
눈부시게 놀리는 진정한 저
엄지족들만의 미래의, 아니
오늘의 주인공들 아니겟어,그러니
"엄지처럼 수다스럽다."라고
표현해야만 알아듣는 그런 때가
올 거야.머잖아.곧. (-13-)


사람들 대신에

호주 멜버른 거리 한복판에
플라타너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깅하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앗! 마스크를 안 썼어."
그래 ,플라타너스가 대신 썼다.

제주도 돌하르방이
통방울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여행 온 사람들을 째려본다.
"아니, 마스크를 안 쓰다니?"
그래,. 돌하르방이 대신 썼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여전히 
활개 치는데,방심한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즐겁고 마음 편한 동안
돌하르방과 플라타너스와
또 다른 누군가가대신
가슴을 졸인다.(-39-)


똑똑똑

칠십 평생
귀를 활짝 열어 놓고 사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문을 해 달았다.

보청기로 막힌 귓구멍 속 길이
온통
캄캄해졌겠다.

할아버지는 
그 길을 밝히며 또렷한
발걸음으로 달려올
소리를 기다리신단다.

나는 문을 처음 노크하듯
속삭여 본다.
-할아버지, 내 목소리
잘 들려요? (-69-)


한살 한살, 나이가 먹어가면,시와 멀어지게 되고, 소설과 가까워지게 된다. 소설을 읽게 되면, 인문학 책을 가까이하게 되고, 점차 사회적인 이슈와 문제,경제와 관련한 책들을 탐독하게 된다.내 앞에 놓여진 문재들을 해결하느라 바쁜 가운데,성공과 성장의 날개를 갈구하게 되었다.정작 우리는 딱 한가지,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사람에 대한 배려와 여유,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들을 말이다.이기적인 것을 잠시 내려놓고,나와 타인을 생각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이런 마음들은 소설에는 없었다.어릴 적 처음 접하였던 그 순수한 마음,동심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점점 더 가까이 하게 되는 책이 동시집이며,동화책이었다. 나의 어릴 적 꿈들과 두려움,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기 위한 소중한 삶이다.그런 가운데, 시인 신형건님의 <엄지 공주 대 검지 대왕>은 지금 우리의 모습,트렌드,과학과 기술이 반영된 생활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내 손안의 인터넷,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삶을 즐기고, 웃게 되고, 소통과 공감,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스마트폰에 나의 얼굴을 들이대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집에서든, 밖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걸어가면서도 우리는 스마트폰에 내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책에서 엄지와 검지는 디지털과 가까운 무형의 가치였다.소위 검지로 독수리 타법을 쓰는 아빠와, 엄지손가락을 능숙하게 쓰는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찬 독특한 발상이었다.


이 동시집에서 특이할 점은 마스크다.우리는 이제 마스크와 밀착되어 있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그것을 쓰지 않으면 눈치를 주게 된다. 오죽하면, 마스크 쓰기 캠패인을 벌이면서, 사람 모양의 사물에 마스크를 씌울까 싶을 정도로,마스크를쓰지 않으면 민폐가 되는 세상속에 살아가고 있었다.바로 호홉기 질환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세상, 그 세상을 이 책에는 쉬운 글과 문장,비유와 상징으로 엮어 나가고 있었다. 동시집 한 편을 읽으면서, 이제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단어가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게 되었다.어릴 적 읽고 또 읽고 외웠던 동시집이 자꾸만 나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