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는 순간 - 강세환 시집 예서의시 12
강세환 지음 / 예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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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먹은 인사들의 정경

아직 종쳤다고 생각하지 않는 구순의 늙마
혼자 배드민턴 치던 중년 여자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후배한테 밀려 탈락한 5선 현역의원
이번 학기부터 자기 시간 없어진 시간강사
아직 보지 못한 거돈사지 당간지주
무허가 간이주점의 얼굴 마담

첫눈 쌓인 백지 위에 여자 이름 커다랗게 써 놓은 남자
작년에도 밭을 통째 갈아엎은 농사꾼
약수터에서 물마시던 불법 체류자
출판사에서 되돌아온 원고를 바라보던 중견 시인
냉수 한 컵 또 한 컵 마시던 중년 여자
여기 한 사람 추가요 아직 접지 못하고 시 쓰는 앞에 골몰하는 소위 한국시 제작 영세 자영업자. (-27-)


우울의 유혹

나는 잡시 우울을 먹고 살 것이다.
서운할 것도 없다,
우울도 시가 되고
힘이 될 것이다.
좋은 것만 머고 살 수 없듯이 
우울도 약이 된다. (-66-)


새벽 네시

새벽 네시
시를 읽을 시간도 아니고
시를 쓸 시간도 아니다
출근할 시간도 세수할 시간도 아니다
잠을 깰 시간도 아니고
잠을 잘 시간도 아니다
새벽 네 
어디 한 군데 몸이라도 뜨거워지면
시를 맞이해야 할 시간?
스 쓰기 딱 좋은 시간
시 쓰기 딱 좋은 제목
새벽 네 시까지 내 시집을 읽었다는
강원도 후배 시인의 문자를 받고
새벽 네 시
시 쓰다. (-90-)


여기 한 표

향후 직종 간 임금 격차 단계적으로 줄인다면
각 시도 및 기초자치단체 등 통폐합한다면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 수 축소 공론화한다면
기왕 중대선거구제 공론화한다면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혼합한 '분권형 대통령제'까지
차기 정부 '작은 정부'공약한다면
인구정책 전문가 중심 국가 특별 위원회 설치하면
서울 시내 자전거 도로 확대 및 재정비하면
도봉면허시험장 부지 '청소년 전용 대규모 복합 문화공간'건립한다면
예체능계 사설학원 공교육과 연계하면
서울 도심 승용차 홀짝제 시행한다면
영동고속도로 연중 통행 무료화한다면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개발하면
시집 300부 한정판 아님 20권 간행하면?
-여기 환 표!(-79-)

시인 강세환의 <시가 되는 순간>에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구도를 엿볼 수 있었다.시인은 우울을 먹고 살아간다. 그러나 시인은 현재,지금을 살아가고 싶어하였다.시인에게 현재는 시인이 추구해야 하는 고고한 가치이며, 이상이었다.하지만 시인은  매번 그럴 수 없었다.이상만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시인의 삶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시인에게 현재란 자신의 자존심이며, 높고 높은 희망이자 이상이었다.내일은 바로 시인의 물짋적인 욕망이며, 현실과 자신의 타협 그 자체이며, 자신의 미래를 약속하거나 약속받는 매개체이다. 즉 시인이 시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고한 이상과 시상을 추구하는 것은 팍팍한 현실 앞에서 점차 점차 무너지게 된다.시를 쓰는 영세자영업자라 말하는 시인에게 시가 되는 그 순간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감정에 있으며, 시라는 매개체는 시간과 장소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나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시의 깊이와 주제, 그리고 단어와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시인 자신은 시를 통해서 사회에 관심 가지게 되었고,정치에 관심 가지게 된다.


돌이켜 보면 그렇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인조차도 물질적인 자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우리 사회의 속물 근성을 시에 담아내는 것은 시인의 자존심이다.정작 자신은 그 속물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돈과 자본을 위해서 시를 쓰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문자,하나 전화 한통화로 시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다.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움과 균형잡힌 시상,그안에서 스스로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시인 강세환님의 시에 대한 갈구와 몸부림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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