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22-6.jpg


222-7.jpg


222-8.jpg


222-9.jpg


그러나 사치의 집은 다르다.널찍한 마당이 있고 땅도 여분이 있을 테다.낡고 역에서 멀다는 단점은 눈감아줄 정도로 지내기 쾌적해 보였다. 유키노는 사치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이런 집을 도쿄에,그것도 23구 내에 가졌으니 악착같이 일하지 않고 자수를 놓으며 살 수 있는 거지'라고 다소 심술궃은 마음을 품었다. (-47-)


사치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허전함이 항상 자리했다.갓 태어난 자식을 남기고 훌쩍 집을 나가버리는 아버지도 아버지이고 쫒아낸 엄마도 엄마다.하지만 이걸로 쓰루요를 몰아붙이며 따질 순 없다.어른이 됐으니 더 그렇다.돌을 삼켜위장에 넣고 그걸로 음식을 짓이기는 악어처럼 ,사치는 기댈 곳 없는 허전함을 돌로 삼아 수많은 감정을 소화했다. (-162-)


뒷문에서 마당으로 들어가 현관을 본 사치는 무심코 걸음을 멈췄다.문 앞에 작업복을 입은 가지가 서 있었다.상황을 파악한 유키노가 옆구리를 찔러 사치는 구르듯이 가지에게 다가갔다. (-293-)


일본 소설 미우라 시온의 <그 집에 사는 네 여자>의 뒷면에는 한 집에 살아가는 네명의 여성의 집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일본 도쿄의 한가운데,비싼 땅 미키타가에 있는 집은 2층으로 되어 있는 150평의 건물이었다.그 집의 주인은 2층에 살아가고 있는 서른 일곱 먹은 자수 일을 하는 사치와, 일흔이 다가오는 사치의 엄마 쓰루요이다. 이들 집에서 세들어 사는 유키노와 다에미는 서로 아는 사이였으며, 유키노와 사치는 서로 알고지낸지 오래된 친구관계이다.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집세를 내고 받는 임대의 형태를 띄고 있는 여자 네 명이 살아가는 집에서는 따로된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남자 한 사람 밖에 없는 독특힌 집구조와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지극히 속물적이었고,그로인해 세입자는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사치가 특별한 일 없이 자수를 놓고, 사치의 엄마가 여왕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비싼 집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는 유키노와 다에미였다.이런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자 넷 앞에 놓여진 갓파 미라는 그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감춰진 비밀의 공간에 일본 요괴 갓파 미라가 있었다.그로 인하여 사치는 엄마 쓰루요가 숨기고 있는 과거의 실체, 집에 아직 들어오지 않는 아빠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 소설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즉 이 소설에서 중요한 키포인트는 다른데 있다.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도, 정작 정신적임 문젠, 정서적인 문제는 그에 비례하지 않았다.쓰루요와 사치의 속물적인 허전함과 공허감, 세입자로서 유키노와 다에미가 가지고 있는 빈티지적인 허전함과 공허감은 큰 차이가 없으며, 서로 비슷하면서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과 선입견은 우리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으며, 사람을 바라보고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의 물질적인 조건이나 사회적인 상황을 내려놓고 바라볼 때,돈독한 그 과정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리뷰어스배너.p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