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혼자 웃는다 예서의시 11
박세현 지음 / 예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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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웃는다

가끔 나는 혼자 웃는다 웃는
연습을 해본다 이 웃음인가 저
웃음인가 가늠이 되지 않아 한번
더 웃어본다

가량 이런 것에 대한 맹한 생각들
나는 살았던 것일까?
선배 시인의 시를 읽고 뒷세대의 
단편 소설을 읽고 속절없이 폐업한 단골
카페주인을 회고하면서 나는
정말 살났던 것이 맞는가?
나는 가끔 살아왔던 날이 아니라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후회한다.
가령 이런 것
남의 시에 밑줄을 긋고 첨삭하면서
시인과 다투는 꿈 시인이 아니어도 좋고
누구여도 좋고 영화 속의 패터슨이어도 좋다.
가끔 혼자 웃지만 그건 웃음이 아니다 울음인 것
웃을 일만 골라 웃었던 자신에 대한 복수
표기를 고친다 복쑤

웃음 없이 웃었던 날들이여
군살 빠진 웃음이여
우습지도 않은 웃음이여
이여 이여. (-21-)

시는 각자의 헛소리

내 시에 누가 의견을 달아놓았다
악플이다 고맙습니다 진심
그것도 귀하게 얼른 눈에 집어 넣는다
악플러는 좋은 시가 있다는 문학사의 환청에
시달리는 구식 문학주의자일 것이다
사랑스럽다
넘치도록 나는 존중하겠다

어제는 부람산 둘레길을 횡단하고
산 밑 절에서 비빔밥을 얻어 먹었다
연등아래 나타난 보살과 어린아이들이
줄줄이 핀 금낭화처럼 반짝거렸다
비빔밥이 시고 미역국이 시고
툭툭 잘라놓은 붉은 수박이 시였다
산바람 섞인 이회용 커피에도 반 배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이 아니라
뭇언어에 진심이 꽃힐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이상
구식 시인의 재량으로 떠들어보았음. (-54-)


다짐한다

누구처럼
솔직하게 살지 말자
다짐한다
입술에 남은 애드리브 흔적
손으로 문지르고
나는 잠든다
누가 깨워줄까 (-64-)


모닝빵

라캉의 에크리 번역본
1092쪽 짜리 벽돌
불란서에서 모닝빵처럼
팔려나갔다는 소문의 그 책
내 책상에 있다

정가 13만원
미쳤나 
모닝빵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제값 다 주고 샀다는 거
나는 저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지금 너무 나는 제 정신이므로(-95-)

시인은 시를 통해 자유로워질 자격을 얻게 된다.시인은 시를 통해서 자조섞인 말을 하고,시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가면서,자신의 삶을 위로받고자 한다. 시에 채워져 잇는 관념적이면서,추상적인 시어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시를 담아낼 때,독자는 그 시에 여러가지 해석을 달아놓게 된다. 소설과 시가 다른 점은 여기에 있었다.소설은 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오류를 거부한다. 시는 그렇지 않았다.어쩌면 독자들의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시 속에 있었다.시는 그래서 우리에게 창의성의 원천이 되었고,우리는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검증받고자 하였었다.우리느 시를 통해서 위로를 얻고,때로는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에서 나에게 얻지 못한 삶은 전부다 후회로 남아있었으며, 그 후회는 또다른 후회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혼자 서 누가 보든 말던 웃을 때가 있었다.이유없이 혼자 웃는 웃음은 위로와 치유의 원천이다.


시에 많은 것을 담아내지 말자.나의 삶을 시 속에 너무 노출시키지 않는 것,그것은 정갈한 시의 원천이 될 수 있다.시에 의미를 담아내지 않음으로서,독자들이 시에 의미를 채워 나갈 수 있었다.시에 단어를 나열하지 않음으로 독자들이 단어를 시에 채우게 된다.그것은 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이면서,시에 대한 역설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시는 <모닝빵>이었다.즉 나의 삶과 거의 일치하는 시가 바로 나의 눈과 귀와 코를 자극시키고 있었으며, 후각,청각, 미각을 동시에 얻게 된다.읽지 않으면서 책을 사게 되고, 벽돌책을 애지중지하게 된다. 내 앞에 책이 있으면서도,책을 다 읽지 않으면서 책을 사는 것이었다.시인도 또한 그러하였다. 10만원 넘는 책 라캉의 에크리는 목배게로 쓰기에 딱 좋은 책이다. 지적인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의식하는 매개체로서, 라캉의 <에크리>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시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나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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