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독도
황인경 지음 / 북치는마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0-1.jpg

 



"면허를 가지고 울릉도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하오나 그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분한 마음에 체면을 무릅쓰고 직접 이렇게 도주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듣자하니 도주님께서는 일찍이 울릉도를 왜의 소유로 돌리기 위해 애쓰신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이 분한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주실 분 또한 도주님인 듯하여..."(-42-)


본디 밀무역을 하다 잡힌 이들은 '약조제찰비'에 따라 사형으로 다스려져야 마땅했다.10여 년전,동래부사와 쓰시마 도주 사이에 왜관 운영에 관한 조항을 체결한 이후로 더욱 엄격하게 단속을 하던 때였다.그러나 밀무역을 완전히 뿌리 뽑기엔 역부족이었다. (-99-)


조선은 울릉도에 꾸준히 수토사를 파견해 왔다.이는 '여지승람'에도 기재되어 있는 명맥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수토사를 만난 바가 없어 조선이 울릉도를 버린 것이라는 주장은 억측이다.우리는 울릉도를 결코 포기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조선의 영토로서 관리해 나갈 것이다. (-180-)


'부디 저 때문에 목숨을 잃고 다치신 분들을 위해 써주십시오.검을 팔면 값이 좀 될 것입니다.' (-231-)


'내가 바로 조울양도감세관((朝鬱兩道監稅官) 안용복이다!"
조선의 울등도 두 섬,즉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살피러 온 수토사라는 뜻이었다.조선 조정에서 수토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말은 뜬소문이라고,자신이 바로 그 수토사라며 존재를 확인시킨 셈이었다. (-281-)


지금 현재 21세기에도 여전히 독도를 일본은 다케시마라 하면서,동해를 일본해라 부르고 있다.그리고 동해에 있는 작은 무인도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있었다,그러나 독도에는 한국 경찰이 경비를 도맡아 하는, 수호 경비대가 있으며,독도를 대한민국 땅이라고 천명하고 있다.이러한 모습은 16세기 숙종 임금때도 있었다.그 당시 대마도는 쌀이 생산되지 않는 높은 산이 있는 버려진 섬이었다.대마도 도주와 그 섬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남해를 수시로 침탈하면서, 쌀과 식량을 구해오거나 밀무역을 하는 일이었다.그 과정에서 독도 하면 떠오르는 인물 안용복이 등장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안용복은 왜인 선장 오오야 시게무네에게 불법 어획과 밀무역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된다.하지만 조선 조정은 오오야 시게무네가 아닌 안용복에게 책임을 물었으며, 안용복은 숙종 임금 앞에서 문책을 당하게 된다. 소위 자신의 책임의 경계를 넘어서서 ,월경을 했다는 억울함을 안용복에게 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숙종임금의 의도된 행위였다.그 시대에 정치적인 상황, 노론과 소론이 대치되었던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숙종에게 안용복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의 조정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숙종이 생각해낸 카드가 독도와 안용복이었던 것이다. 소위 버려진 땅 울릉도와 독도,하지만 그 땅은 조선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곳이지만, 왜인에게는 꼭 필요한 땅이었다.그 과정에서 안용복은 그 땅이 조선땅이어야 하는 명분 ,즉 자신이 수토사라는 것을 들이밀어서 ,예기치 않은 상황을 빠져 나오게 되었으며,쓰시마 도주에게서 독도는 조선땅이라는 확답을 받아오게 된다.이 소설에서 알수 있는 것 바로 안용복이 보여준 협상력이다. 소설 속에서 쓰시마 도주는 소우 요시쓰구였으며, 소우 가문이 대대로 대마도 도주가 된다. 하지만 현 대마도 도주에게는 안용복을 상대하기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었다.쓰시마 도주가 직접 안용복에게 섣불리 대항한다면, 조선과 왜나라 간에 무역분쟁이 일어날 수 있고,대대로 이어져 온 자신의 소우 가문이 풍비박산날 수 있었기 때문에,안용복의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소우 나오코와 안용복의 사랑도 눈여겨 볼 수 있으며, 대마도 도주의 어린 남동생 소우 요시미치는 어떤 인물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