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 연쇄사진사건
임요희 지음 / 앨리스북클럽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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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조금 넘게 만났을 때에요.그가 청혼을 했어요. 너무나 기자렸던 순간이었죠.우리는 함께 살 집을 알아보러 다녔어요.그런데 돈이 좀 모자랐어요. 말로만 듣던 달동네, 눈이 오면 길이 흘러내리는지 모를 정도로 미끄러운 그런 구석진 곳까지 찾아다녔죠. (-30-)


작은 집이라도 상관없었어요. 두 다리만 뻗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니에요? 아니 다리쯤 오므리고 자면 어때요.꼭 껴안고 서로 머리를 기댈 수 있다면 불편한 건 문제가 아니죠. (-32-)


저를 괴롭히는 건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험담이 난무했어요.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죠.제가 싸가지가 없어서 차였다고 하는 사람, 제가 돈이 밟혀서 그를 찼다고 하는 사람,별별 말이 다 돌았죠. (-58-)


모든 게 부서져가요.육신도 마음도,그렇게 부서지다가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겠죠. (-96-)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거예요.생선장사라도 못할까요? 새벽에 일어나서 좋은 물건을 떼다가 싸게 팔거에요. 그러면 단골이 생기겠죠? 단골이 손님을 데려오고, 그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데려오고, 하하하, 생각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아요. (-112-)


누가 저만치 앞에서 길을 안내해 주었으면 좋겠어요.이 길이 맞다고 저 길로 가면 안된다고.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렸다고 ,친절한 인생 내비게이션이 필요해요. (-160-)


엄마가 보고 싶어요.늘 저를 위해 기도하시죠.저 하나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살았는데 제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212-)


저도 이만 갈래요.집이 저를 기다려요.가정이나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집,건물을 말하는 거예요.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곳,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곳, 저의 냄새가 스며있는 곳, 저에게 냄새를 나눠주는 곳..집의 냄새는 사람의 냄새를 닮아 있죠.그래서 집은 세상에서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곳이에요.내가 버리기 전까지 내 집은 거기 있을 거예요. (-254-)



저자는 이 책을 두번 읽어보라고 한다.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그 삶을 한 번 보고 ,두번 보면 그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앞에 놓여진 희노애락의 연속에 있었다.그것은 각각의 드라마의장면이었다. 좋은 날만 있다면,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비가 오고,눈이 오고,덮고,추운것,그것이 우리의 삶 그자체이다.좋은 날보다 나쁜 날이 더 많고,기억되지 않은 날보다 기억되어지는 날들이 우리 앞에 스며들게 되었다.'이 소설은 사진액자 소설이라 부르고 있었다. 사진 하나 하나가 서로 연결되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동안 읽었던 소설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사진과 스토리가 같이 곁들여 잇다.에세이스러운 소설 속에는 갘은 장면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누군가는 그 장면을 비극이라 할 수 있고,누구는 희극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그 경계는 항상 모호하며,애매하다.저자의 책 속에서 내 삶이 층층히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나에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스토리,그 스토리는 각각의 컷과 컷이 연결되어서,하나의 매끄러운 이야기가 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연속된 일상과 장소,삶과 일이 겹쳐져 있지만,각각은 서로 독립적인 하나의 컷이 될 수 있다.즉 이 소설은 나에게 소설에 대한 생각과 가치를 바꿔주고 있었다.소위 소설의 혁신이며,내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그에 맞는 스토리를 써내려 간다면,그것은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긍정 속에 비극적인 삶이 보여지며,부정 속에 희극적인 삶이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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