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연대기
기에르 굴릭센 지음, 정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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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미는 친밀하면서도 겁이 날 정도로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그때만 해도 그 눈빛이 나는 물론 아내네게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나중에서야 그녀는 우리가 나누었던 친밀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게 되어다.그러니까 상대가 보여주는 친밀감에 대한 보답,일종의 기브앤테이크 같은 것이었다. (-34-)


우리는 서로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 서로를 향해 두 팔을 뻗고 ,서로 얼굴을 맞대며, 서로 입술을 부딪쳤다.서로의 입이 열리고 ,내가 그녀의 입안에 혀를 들이밀자,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잠시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혀를 내밀었다. 그렇게 일분 ,아니 그보다 더 오랬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길고 뜨거운 키스가 이어졌고, 잠시 후 서로 얼굴을 뗀 다음 생기 넘치는 상대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마침내 티미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72-)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육체와 그 사람의 따뜻하고 다정한 면과 강렬한 굶주림을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의 육체와 따뜻함, 굶주림과 절망 그리고 환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나를 한껏 내어주고 ,내 옷을 벗기도록 허락하고, 나를 만지도록 해주고, 우러러보게 하며, 반대로 나 역시 상대를 우러러보고 거리낌 없이 옷을 벗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112-)


하지만 그것 말고 또 다른 것이 있었다.장성한 남자의 옷깃 속에서 풍기는 짜릿하고 메케한 온기, 그는 티미의 뺨에 건조하지만 기분 좋은 느낌을 담아 입을 맞추었다.그리고 "잘 가요"라고 말했고, 그제야 티미는 그의 손이 자신의 무릎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손을 올린지도 알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순에서 자신의 허벅지 위로 강렬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193-)


그제야 티미는 자신의 배우자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행복하게 함께 침대에서 뒹굴던 사람에게 왜 독약을 먹이고 머리에 총을 쏘고 목을 죽이는지 말이다.그것 말고는 상대에게서 자유로워질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257-)


노르웨이 문학가 기에르 굴릭센의 문제의 작품 <결혼의 연대기>이다. 이 책은 우리의 보편적인 결혼의 가치관에 대해서 티미라는 여성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고, 소설 속에서 ,티미의 남편은 관찰자 '나'로 존재하고 있다.소설 속에서 '나'는 티미를 관찰하는 인물이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며,그 결실은 지속성을 띄고 있다.그러나 그 지속성이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다.결혼과 사랑은 서로 갈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며,그것이 어떤 본질적인 요소를 잃어버리게 되면,갈구의 대상에 대한 친밀감이 사라지게 된다.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티미를 바라보면서, 일종의 기브 앤 테이트,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감정조차도, 감성 조차도 티미에겐 거래의 이유였다.


남자는 대체로 결혼 전 성관계를 가지고,결혼후에도 성관계을 가지게 된다.그 과정에서 서로 합의된 암묵적인 규칙과 절차가 존재하며, 그 나라의 문화와 상식,관습과 서로 상부상조하게 된다.이 소설은 그동안 읽었던 로맨스와 달리 여성의 심리 묘사가 아닌 남자의 심리를 엿볼 수 있으며,여성의 행동 하나 하나를 남자의 기준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소설 <결혼의 연대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결혼 이후 그들의 삶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한국은 연애를 하고 부부라는 하나의 틀에서 서로 규칙과 원칙을 정하게 된다. 자유롭게 연애생활을 하였던 삶이 결혼 후 아이를 가지면서 바뀌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하지만 노르웨이의 결혼관은 그렇지 않았다.아이가 있어도 그들은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사랑을 하고,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그건 그들에게 사랑은 가족과 분리된 각자의 사생활의 영역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로움 속에서 어느정도 사랑에 대한 관대함이 소설 곳곳에 보여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주인공 티미는 사랑을 거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남자의 관찰로 보면 묘한 기분,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티미가 어울리는 남자의 행동 하나 하나 관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티미가 추구하는 그 본질적인 요소가 결혼의 이유가 된다면,그 본질적인 요소가 사라질 때, 결혼은 깨질 수 있다.소설 속에서 마라톤을 즐기면서 ,스키를 즐기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티미의 자유분방함이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다른 남자를 찾는 이유,티미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여기에 있다.합의된 결혼,합의된 사랑,그 안에서 우리의 다양한 삶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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