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이면 또 어떻고
키뮤리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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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을 보며 걷다가 1

문득, 벌건 옷을 입고 걸어도 된
간단한 이분법이 되레 성가시다

깜박이는 퍼런색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테두리 안의 숫자가 줄어가다
도중 발이 엉켜 무릎을 찧었다

차머리는 심술궂게 들이댄다
클랙슨 소리는 화음이 엉망이다
불규칙한 심박,
무릎을 펼칠 새 없이 귀를막았다

되감는다.
생은 시간이 짧다.

찧을 걸 안다면
속히 일어난다면 (-17-)

후유증

당신과 마주 대하며
마알갛게 웃던 장면
준비없이 흐른다

늘 만지던 당신 얼굴
수백가지 우리 유머
기계에 넣고 옥죈 듯

가만히 있다가도 
고개가 틀어진다

무의식 속 자투리의 요동인가
의식 속 불덩어리의 고동인가

애가 타게 둘러본들
이제 없는 당신인데
어쩜 이리 고역인가 (-29-)


쓰레기통의 쓰레기들은1

밟으라고 달려있는 페달은
들어가는 자들의 악 소리 같다

조금 남았다,
냉장고행 이는 통 안의 자와는 다를까
지척에서 심판 받는 심경이란,

쏟아질라치면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린다.
겨우 밖에 나와도 단념하라 배웠다.

경이로운 탄생은 잠깐이었고
호기롭던 기세는 망각되었다. (-48-)


신호등을 보며 걷다가 2

여기 발갛고 파란 두 인간이 있다

흘금 한 번 없이 제때를 어찌 알고
제 색을 내다 끄기를 반복하는 줄은
나란히 있지 않다

모든 게 끝나 새로운 시작 앞에도
단 한 번 부둥키지 못하는 둘은
가장 가까이에 산다

하나는 서 있고
다른 이는 발을 뻗는다

선 자는 발이 묶여 뒤따를 수 없다
오는 이를 안을 겨를 없이 보내기만 하다
응어리는 피가 되어 선채로 흘렀다.

걷는 자는 잡아 달라 몸소 발을 뗀다
언젠가 오리라 오지 않는 이를 믿어보나
차게 식다 굳어 새파랗게 터졌다. (-84-)


시인 키뮤리는 작사가이면서 수필가이며, 시인이었다.책의 앞 부분에 그녀는 '죽으마다 죽지 말고 살아가다 죽자'라는 의미심장한 문장 하나를 남겨 놓았다.우울의 심층적인 깊이,기대와 희망을 갈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고통, 표출, 치유,이 세가지 부제에 걸맞는 시들은 내 삶의 차가운 곳을 파고 들어가게 된다. 시 속에서 삶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으며,인간의 본성에 파고 들어가게 되었었다. 저자는 이 세가지 부제를 통해서,세상을 관찰하고,거기에 맞는 시구를 적어 놓았으며, 자신만의 철학적인 관조를 시 속에 녹여내고 있었다. 신호등과 쓰레기,이 두가지는 나의 또다른 모습이었고, 흔하디 흔한 우리의 일상 속에 표출되는 또다른 물질이었으며,물질 속에 현상을 찾아가고 있다.거들떠 보지 않는 그것에서 시인 키뮤리의 독특한 시상을 얻을 수 있었다.비참할 수 있는 그 순간에 울려 퍼지는 자동차의 차가움, 차가움에 차가움을 더함으로서,그 안에서 인간 혐오와 인간 편견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수치심 가득한 그 순간에 자신를 반드시 일으켜야 한다는 것, 감정 이전에 이성이 먼저였다. 빨리 빠져 나와야 살 수 있다는 것,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었으며, 살아가기 위한 날개짓이었다. 시인은 바로 그런 부분들을 들추어내고 있었다.우연적인 사건, 완벽하지 않은 상황이 빚어낸 하나의 조건과 가치, 장면들, 그러한 것들은 시상에 방사형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나의 과거의 추억과 상부상조하게 된다.죽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나가야 한다는 것,미완성인 것을 미완성인 채로 두는 것이 삶에 대한 통찰이었으며,미완을 완성으로 전환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표출함으로서, 위로와 치유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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