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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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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고고학 발굴사에서 최대 사건으로 불리는 무령왕릉 발견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1971년 6월 29일, 장마를 앞두고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가 시작됐다.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왕족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일제강점기 도굴을 당해 텅 빈 상탸였다.이런 장소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왕릉을 찾은 것이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17-)
대장경은 오늘날까지 훼손없이 잘 보존되어 왔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 승병이 목숨을 다해 사수했다. 당시 일본 최고 법사가 "팔만대장경을 건드리게 되면 일본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해 가져가지 않았다는 설도 전해진다.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는 해인사에 일곱 번이나 화재가 발생했지만 멀쩡했다.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대장경을 통째로 갖고 가려고 시도했다는 얘기도 내려온다. 한국 전쟁 땐 폭격의 위기도 피했다. (-121-)
의상과 선묘의 애틋한 전설이 깃든 부석사는 창건된 이래 수차례 다시 지어지고 고쳐졌다.법당인 무량수전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부처를 모신 건물)은 1016년 (고려 현종_ 중창됐으나 1358년 불타 1376년 새로 건립했다.의상의 사당인 조사당은 1377년 재건됐고,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는 무량수전의 해체수리 공사가 진행됐다.따라서 현재 무량수전은 고려 말 우왕(재위 1374~1388)때의 건물이다. (-208-)
분황사 경내 한가운데 신라 석탑 중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모전 석탑이 있다.634년 분황사 창건 당시 건축된 것으로 추측되느 이 탑의 정식 이름은 분황사 모전 석탑이다.반면 모전탑은 벽돌의 전탑을 모방해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는다. 분황사 탑이 바로 모전탑이다. (-305-)
대한민국에는 332개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다.인터넷이 없던 과거,우리나라 문화재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백과사전을 직접 보고 확인했던 것과 미추어볼 때,인터넷으로 실시간 문화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 문화재는 5000년 역사의 흔적들이며,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유산이었다. 저자 배한철님은 문화재 기자 이며,우리의 소중한 문화재 자산에 대해서 관심가지고 있으며,그중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 중 익히 알려진 문화재를 40여 점 소개하고 있었다.
찬란한 역사,그 뒤에는 문화재가 있다.전쟁과 화재,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로 인하며, 문화재는 많이 소실되었고, 많이 도난당했다. 임진왜란, 삼국 통일, 그리고 한국 전쟁, 일본과 프랑스에 의한 도굴과 해외 문화재 유출이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밳제시대 찬란한 역사 무령왕령조차도, 문화재 발굴과정에서 거의 쓸어 담다시피 하였으며,문화제에 대한 인식없이 문화재 발굴을 시작하게 되었다.이 책에서 안타까웠던 것은 콘크리트로 덮여진 불국사 석굴암이다. 일제강점기 때 , 석굴암 문화재 해체 수리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덧 씌워서, 문화재의 부패의 원인이 되었으며,여전히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화재로 인한 문화재 소실, 특히 숭례문과 경복궁은 문화재 소실로 인해 큰 아픔을 겪고 있었다.특히 경복궁의 화재는 일제에 의해서 자행된 것도 있지만 조선시대 백성들의 실화로 인하여, 화재가 일어난 경우가 더 많았다. 낙산사에 있는 국보급 문화재는 산불로 인하여 완전 소실되었으며,복원된 문화재는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찾기 힘든 현실이다.숭례문은 최근 방화에 의해서 소실되고 말았다.
전쟁과 도굴로 인하여 우리의 문화재는 해외로 많이 반출되었다.그래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민간인 소유의 문화재는 해외 유출을 금지하고 있었다.책에서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감정가격을 간간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 기준은 해외 경매각이 아닌 문화재 보험 감정가였다.그중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1조원에 가까운 비싼 감정가이며, 문자의 역사를 알수 있는 유일한 문화재이기 때문에 희소성과 상징성이 상당히 크다 말할 수 있다.최근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상주의 훈민정음 해례본 진위여부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그만큼 훈민정음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희소성은 그 무엇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으며, 대한민국 문화재의 존재가치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