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가 전하는 이중언어 교육 이야기 - 싱가포르의 위대한 도전
리콴유 지음, 송바우나 옮김 / 행복에너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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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는 1923년에 태어나, 2015년에 세사을 떠나게 된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정치 경제,문화,국가관을 심어 주었으며,싱가포르 총리로서 독재를 하였지만,리콴유가 보여준 리더로서의 자질은 지금의 싱가포르를 완성시켰다. 이 책은 그가 살아생전 심가포르에 심었던 교육적인 가치, 싱가포르의 100년의 역사, 그 과정에서 척박한 자연환경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가까이하고 있었다.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식민지로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었으며, 타밀어,말레이어, 중국어를 병용하게 된다. 이처럼 중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그들과 격을 다르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척박한 땅에서, 싱가포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사람이었다. 즉 영국이 식민지 지배를 하였던 당시 싱가포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교차하였다. 말레이 인들 대다수였던 싱가포르 인들이 중국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국의 방언은 사용하였지만, 중국 베이징 표준얼르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중국의 정치, 문화,제도,언어가 싱가포르에 스며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는 생존이 걸려있었다.말레이 문화권에 속해 있었던 싱가포르는 자원이 부족하였고,대부분의 자원은 가까운 이웃 국가 말레이시아 반도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서로 각자의 노선을 걷게 되었고, 싱가포르는 새로운 돌파구를 필요로 하게 된다. 자원이 없고, 온전히 사람에 의지해야 했던 싱가포르가 채택하였던 방법은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즉 영어와 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를 병용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기능적인 언어를 쓰게 된 것이었다.즉 리콴유는 싱가포르에 특화된 언어 정책을 도입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언어 교육에 매진하게 된다.그 중심에는 지금 국립 싱가포르 대학교로 바뀐 난양대학교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싱가포르인들이 미국이나 서구권에 해외 취업을 하면서, 큰 두곽을 나타내게 된다. 싱가포르 특유의 똑똑한 머리와 이중 언어, 특히 중국어와 영어를 같이 쓰는 인재는 서구사회에서 큰 희소가치가 있었고, 줃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싱가포르를 끌어들이게 된다. 즉 지금의 싱가포르가 금융과 무역, 제조업의 중심지가 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척박한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리콴유 특유의 뚝심, 위기를 기회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 있었으며, 그 중심에 그들이 추구하였던 이중언어 정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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