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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악취를 제거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갔던 현장도 잊히질 않는다. 알고 보니 악취의 근원은 엘리베이터 저 아래에 있었다.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삼십대 직장인이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고 서 있다가 추락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사망한 지 한 달만에 발견되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가 부패한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니의 구슬픈 눈물 앞에서 나도 덩달아 울고 말았다. (-14-)
공문이 오지 않아 경위가 궁금한사건이었다. 경찰서에서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로 공문이 송달되면 그쪽에서 우리에게 다시 보내 주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존속살해 현장이라는 이야기만 전해들었다. (-40-)
내가 살지 못해 떠나는데 나 때문에 주인 아주머니께 피해가 가면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 돈으로 모두 완벽하게 보상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유서에는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상황도 적혀 있었다.
사업가였던 그는 사기를 당해 자기도 모르는 죄를 짓게 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94-)
현장을 정리하다 보면 굳이 잘려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인테리어와 가구, 집 안의 물건돠 책들은 이 집에 살앗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말해주곤 한다.
고인의 집은 방문과 창틀, 몰딩은 모두 흰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그와 대조적으로 가구는 모두 검은색이었다. (-159-)
내 고정관념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깨달은 그날, 그런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용기를 잃고 삶을 놓아버릴 만큼 좌절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철렁했다. 나 역시 편견 때문에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면서 정작 나 자신은 어떤지 돌아보지 않았다. 한 생명을 해할 수도 또 살릴 수도 있는 것이 나의 태도와 언행으로 드러나는 내 생각인 것을. (-174-)
'다 버리라고 했으니 액자들도 버려야겠지.'
사진들을 버릴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사람을 버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액자를 분리해 박스에 넣는데 아까 만났던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들어왔다.
"고된 일을 하느라 힘드시겠소. 이거라도 좀 마시고들 하시게."(-214-)
삶과 죽음이 있었다. 삶은 죽음을 응시하는 것이다.그래서 삶은 언제나 쓸쓸하고 고독한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다.내 가까운 가족,친지의 죽음을 만날 수 있고,타인의 죽음을 볼 때도 있다.언제 어디서나 내 곁에는 죽음이 현존하지만,우리는 그 죽음을 외면하고, 불편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이 책의 저자의 직업, 유품 정리사가 있으며,그들은 범죄나 어떤 예고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 죽음을 우가족이 수습하지 못할 때, 유품정리사는 죽은 이의 유가족이 할 일을 대신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그건 범죄와 엮여 있는 죽음이거나, 부패된 시신, 연고지가 없는 누군가의 죽음의 순간을 처리해야 하거나, 측근이 없는상황에서 사고로 세상을 등졌을 때, 대한민국 법과 제도에 따라서, 정해진 절차를 밟게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마음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에 누군가의 죽음은 깔끔하지 않았다.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집기들,집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쓰레기들, 먹다 남긴 채, 방치되어 있는 술병들, 그런 것들은 그 죽음의 흔적이었고, 그 이의 삶의 고통이기도 하였다.누구도 돌봐주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그 죽음의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 이들도 상처가 될 수 있다.유품정리사는 그 죽음을 수습하는 일을 하며, 특수청소를 하는 전애원씨는 죽은이가 머물러 있는 곳에서 악취 제거, 이물질 제거,벽지나 장판에 스며들었던 불쾌한 냄새까지 마무리 하는 특수 청소일을 하고 있었다.그래서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진솔하며, 묵직함이 느껴졌다. 삶의 끝이 깔끔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기본은 지켜야만 한다는 그 사실,그리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죽을 수 있다는 걸 자각할 때,내 삶을 진솔하게 바라볼 수 있고, 내 삶을 성찰하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