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 1,000년을 하루 만에 독파하는 최소한의 로마 지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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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팔로 상체를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 다른쪽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이 동작은 한마디로 '자격이 있는 성인이 격식을 갖춘 식사에 참석해 요리를 먹을 때 취하는 자세'였다. (-54-)


하지만 소시지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것은 로마 시대 때부터다. 유럽 중부와 북부의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에서 훈제한 저장 소시지를 가져다 이탈리아와 같은 남부 유럽에서 소시지를 대중화시킨 것이 로마였다. 로마의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고기와 소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풍부했기에 일반 평민들도 먹을 수 있었을 만큼 소시지의 대중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148-)


지금도 스페인에 흔적이 남아 있는 아우구스타 가도(Via Augusta)가 바로 히스파니아에서 생산된 포도와 와인을 운송하는 데 주로 쓰였던 도로다. 기원저 8세기부터 생겨났다는 이 도로는 스페인 남부의 카디스에서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바르셀로나를 거쳐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장장 1,500킬로미터의 도로다. (-257-)


동방과의 향신료 교역은 당연히 로마의 무역 적자였다. 그래서 플리니우스는 인도에서 향신료를 수입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빠져나간다고 불만을 터트렸던 것인데 로마가 대금으로 지불했던 돈이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19세기에 영국이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면서 대금으로 지불할 은화를 감당하지 못하자 그 대신 아편을 팔아다가 급기야는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로마는 인도와의 향신료 무역에 따른 적자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361-)


동아시아에는 쌀이 있었고, 유럽과 미국은 밀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먹거리는 항상 풍족하지 않았고,유럽의 로마에서 상류층이 즐겨 먹었던 것은 죽이었고, 빵이었다. 밀을 반죽하여, 발효시켜서 빵을 즐겨 먹으면서,그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졌으며, 점점 더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증가하게 된다. 여기서 유럽 사회에서 로마는 유럽의 지배자였다.지금의 독일민족에 해당되는 게르만족이 세계 역사 속에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그 과정에서 로마의 상류층은 포도 생산에 적합한 지역을 물색하였고, 포도를 통해 와인을 즐겨 마시게 된다. 지금 프랑스인들이 와인을 물처럼 마시게 된 것은 그들의 와인문화의 근원이 로마에 있었다. 


폼페이의 멸망,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하였고, 화산재가 폼페이를 덮치게 된다. 그로 인하여 로마는 포도 생산지를 망가뜨렸으며, 와인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하여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화된 새로운 도시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서 ,이동하기 위해 도로를 건설하게 된다. 즉 유럽은 로마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문화가 경제를 만들어 나가고, 확장하면서,무역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었다.즉 인간의 욕구가 타지역에 생산되는 자원은 이동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물물교환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었다.그 과정에서 상류층 특유의 관습과 문화가 형성되었고, 올리브오일을 활용한 목욕문화가 만들어 졌다.하지만 그들의 욕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인도와 중궁의 향신룔르 구하기 위해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전세계으 바다를 항해하게 됨으로서, 문화와 문화가 교류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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