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선 간호사가 엄마래 푸른 동시놀이터 11
한상순 지음, 김지현 그림 / 푸른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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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아가라서

눈과 눈이 만난다.

잔뜩 겁먹은
아기 눈

열이 나
응급실에 온 아기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눈 한 번 마주칠 때마다 
기겁을 한다.

아기는 
아가라서 아직
모른다.


병원에선 
간호사가 엄마라는 걸. (-13-)


어떤 나무

한 나무가 책이 되었다.

한 나무는 책상이 되었다.

또 한나무는 침대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나무는
목발이 되었다.

아픈 다리를 위해
대신 걸어주는
두 다리가 되었다. (-20-)


정기 건강검진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약해진데는 없는지

부족한 영양소가 뭔지

일 년에 
한 번씩

몸이 
시험 보는 날. (-35-)


차라리

차라리
손을 다쳤으면 두 다리로
걷기하도 하지.

차라리
발을 다쳤으면 두 손으로
세수라도 하지.

정형외과 병실에서
두 환자가 서로
아픈 곳을 부러워한다. (-39-)


시험 보는 날

'김인순'
이름도 잊어버린
우리 할머니

파출소에서
열 번째 모셔온 날

"이제 어쩌겠나,
요양원에 모셔야지"

큰 고모가 아빠에게 하는 얘기
들으셨나 보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손주 이름 ,이민수
사는 동네, 우이동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까지
똑똑히 대답하신다.

나는 안다.할머닌 지금
젖먹던 힘까지 다 내신 거다. (-57-)


코로나 19

난 바로 얼마전 태어났어.

지금 텔레비젼,라디오, 신문마다
내 얘기로 야단이야.

모두들 내가 말 붙일까봐 
마스크로 꾸욱, 입을 닫고
손이라도 한 번 잡았을까 봐
손 씻기 싹싹.

또 내가 신나게 뛰어놀까 봐
축구 시합도 안 하고
내가 따라갈까 봐
봄 소풍도 안 간대.

세상에!

이젠 방방곡곡 현수막을 달았네.
어?
날 잡느라 병원 출입구에도 보초를 섰네?

난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구
걸음아 나 살려라!
이럴 땐 도망치는 게 답이야. (-61-)


어쩌다 우리는 병원에 들리게 된다. 병원은 주사기 하나만으로도 무서움을 느끼는 곳이다. CT,MRI  가까운 한기가 느껴지는 병원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차갑게 만들어 놓게 된다. 피가 언급되고, 감기가 언급되고, 서로 질병과 사투하게 되는 특수한 그곳,그곳에도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저자 한상순님은 40여년간 의료 현장에 있었고,자신의 삶과 인생을 동시로 완성시켜 나갔다. 퇴직 이후 두 번째 인생, 주사기가 아닌, 연필과 볼펜을 들었다. 자신의 삶,자신의 인생사, 모든 희노애락을 하나의 이야기에 담아내고 있었으며,그안에서 우리는 또다른 전쟁을 만나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는 곳도 병원이었다.간호사가 엄마가 되는 그 순간, 아기는 태어나게 된다. 엄마로서의 일, 의료인으로서의 일,그들에게 느껴지는 따스함, 생명의 준엄함을 다시 느끼게 되는 현장이며,절대적인 믿음과 신뢰가 요구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 편의 동시집을 읽다보니, 여러가지 주마등이 스쳐지나갔다.정기적인 검진은 내 몸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독특하였고,새로운 느낌이 들었다.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고 싶지 않아서,자신의 지워진 기억들을 다 짜내어서, 가족에게 자신은 아무렇지 않고, 괜찮다고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경찰서에서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것,동시집 한 편속에 누군가의 삶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공포를 느끼고,불안을 느끼고 살아간다. 아이도 마찬가지이고,어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그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었다. 소중한 의료 현장에서, 40년갅 생명을 위해서,질병과 사투하는 그 과정들이 부드럽고 따스한 눈길과 관찰을 통해,한상순님의 동시집에 채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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