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말이 사라진 날 -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
정재환 지음 / 생각정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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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국어의 정립을 통해 문화의 기초를 세우고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일념으로 국문 연구에 전념했다.우리말은 물론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 등을 고찰하면서 근대적 학문의 자세로 우리말을 연구하여 국문법의 토대를 닦았다. 또한 중요한 것은ㅇ 교육이었다.주시경은 자신의 학설을 후학에게 전하기 위해 상동청년학원은 조선어강습원 등에서 강의했다. 최현배는 조선어강습원에서 사사한 주시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51-)


사전 편창, 잡지 간행, 철자법 통일안 작성, 이 밖에 여러가지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그런 가운데 장산사 사장 정세권 씨로부터 서울 화동 129번지 2층 양옥 한채를 조선어학회 회관으로 감사히 제공받게 되었다.그래서 금년 7월 11날에 이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조선어학회가 딴 문패를 붙이고 독립한 호주가 된 것은 창립 이후 처음 일이다. 이 학술단체가 독립된 후주가 된 것은 오직 조선어학회 회원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과학적 사업에 대한 사회의 많은 동정이 있은 까닭이다.(-111-)



각지에서 잡혀온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함흥과 홍원으로 분산 유치됐다.이극로 정인승 권승욱,이강래 이만규 김선기 김법린 정열모 이인 장현식 이은상 서민호 윤병호 서승효정인섭 등이 갇힌 함흥경찰서, 이중화, 장지영 최현배 한징 이윤재 이희승 김윤경 이석린 이병기 등이 갇힌 흥원경찰서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지만 ,형사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사건을 만들려고 했고,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자백할 때까지 끊임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163-)


학회는 곧장 교과서 제작에 착수했다.1945년 9월 2일 이극로, 최현배,의희승, 정인승을 비롯해 교육관계자 등 18명으로 교재편찬위원회를 조직하여 일반용으로 우리말 입문, 국민학교용으로 국어교본 상중하의 세가지, 중등학교용으로 상 하의 교재를 편찬할 것을 결의했다.교과서 편찬은 조선어학회가 주도했지만, 조윤제, 양주동,이은상, 이숭녕,이태준, 주재중 들 외부인사들을 포함해 모두 18인이 참여했다. (-202-)


한글로 책을 읽고,한글로 법전을 쓰고, 한글로 SNS를 하고,신문을 보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한글 교육, 사횓적인 활동, 문맹률 제로, 교육사업 등등, 너무나 익숙하면서,그 익숙함이 있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흘러왔고,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말았다.그러나 그전에 우리는 한자를 썻고, 일본의 민족말살 정책으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조선말을 없애는 것이었다.그들은 일본어 쓰기를 강요하였고,조선말을 쓰지 않도록 강제 하였다.민족의 얼을 한글과 엮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는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았다.일본이 조선을 장악하고, 일본 통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창씨개명을 1940년대에 시작하였던 이유는 그들의 목적,조선이라는 민족을 없애는 작업이었다.조선인에게 입본어를 사용하고,한글을 사용하면,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어학회가 꾸려졌고,한글을 지키게 되었다. 


한글을 그 당시에는 어문이라 불렀다.말 그대로 말그대로 언어로 쓰게 된 것이다. 고종 때 한자가 아닌 어문 사용을 널리 장려했던 이유는 조선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한글이 과학적으로 우수한 언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그리고 그들은 일제의 만행에 저항하였고,조선말 살리기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전국 각지의 사투리,시골말을 모으기 시작하였고, 조선어학회 사건은 그들에게 또다른 위기였다.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고,새로운 시회를 포착하게 된다.'그리고 우리는 미국의 원자폭탄이 일본 본토에 떨얼어짐으로서 해방을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다.나라는 비록 잃었지만, 조선어학회는 한글을 살리는 작업을 시작하였고,그 중심에는 주시경 선생이 있다.북한의 조선말과 남한의 한글이 서로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시경의 제자 최현배와 북한에는 김두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방 전까지 사전 편찬 작업을 지속화시켜 나갔으며,1929년 시작된 한글 복원 작업은 해방 직전에 끝나게 되었다.그리고 남한 단독 정부가 세워지고, 1948년 제헌국회에서 헌법에 일본어가 아닌 한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은 일본의 강제적인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으며,자신의 삶을 다바치면서, 조선의 민족적인 얼을 지키게 된다. 즉 이 책에서 우리말이 사라진 날과 현존하는 날을 서로 비교해 본다면,사전 편찬과 조선어학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항상 조선의 앞날을 내다 보았으며, 순우리말을 보존하고, 표준어 정립에 힘을 써왔기 때문이다. 방송인 정재환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한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조선어학회의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지 붐석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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