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건 8할이 나쁜 마음이었다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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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이 특히 맘에 드는 건
으문형의 문장 끝에 확실한 악센트가 꽂힌다는 점이다.

밑도 끝도 없는 남의 얘기에 고개만 주억거리다
의문형의 문장이 나올 때만 적당히 '네','아니오'를 해주면 날 절친이라 믿는 사람을 얻을 수 있다. (-19-)


기가 막히게 미묘한 지점에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확실하게 선을 넘으면 확 베어버릴 텐데.
깔끔하게 선 밖에 있으면 신경도 안 쓸 텐데.

넘었나 싶어서 보면 선 밖에 있고
선 밖에 있나 싶어 방심하면
목덜미에 꺼림칙한 게 훅 스치는

예민한 병자가 되느냐.
당하고도 모르는 호구가 되느냐.

참으로 불리한 게임판. (-53-)


대놓고 수구꼴통인 것보다

지가 진보주의자인 줄 아는
수구꼴통이 더 싫다.

대놓고 성차별주의자인 것보다

지가 페미니스트인 줄 아는
성차별 주의자가 더 싫다.

세상일 혼자 다 아는 척하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좀 알면 안 되겠니.(-83-)


사회생활이란,

어금미를 악무는 동시에
활짝 웃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 (-115-)


혼나기만 할 땐 몰랐다

혼내는 사람 영혼도 갈리고 있다는 것을. (-129-)

내가 얄팍하니

날 돋보이게 해주지 못하는 회사가 밉고

회사가 미우니

회사 때려치우고는 먹고살만 하지 못한 집안 사정이 밉고

집안 사정이 미우니

알지도 못하면서 회사서 잘 버티라고 하는 가족도 밉고

가족이 미우니

내 한탄 관심도 없고 제 할말만 하는 친구도 밉고

그렇게 다 미워진다. (-138-)

나는 흥미없다

풉.
내 눈앞에 청첩장 들이밀 때
넌 네가 이긴 줄 알았겠지. (-164-)


나쁜 남자의 좋은 점: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상대가 따질 때

'그러는 너는'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무한대로 써먹을 수 있다.(-168-)


너가 그런 데까지 간 건
형들 잘 모셔야 하는 사회 생활의 고단함.

내가 회식 2차까지 간 건
놀기 좋아하는 헤픈 여자의 숨길 수 없는 본능

참 공정한 잣대야. (-184-)


과저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누구에게 비수를 꽂았고
누가 누구를 투명인간 취급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둘 다 내상과 외상을 입었다.

관건은,
누가 먼저 멀쩡해지느냐다.
누가 먼저 오나치해 퇴원해버리느냐다.
누가 더 많이 아팠느냐 보다, 누가 더 오래 아팠느냐,
한때 전부였던 연인간의 승부는 바로 그거다. (-218-)


기자라서 그렇다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대까지 되묻는 건.
네 말에서 오류를 잽싸게 찾아내는 건.
미심쩍은 부분 들이파는 것도.
일단 센 말로 기선제압하는 것도.
관심 끌만한 말로 낚시질에 능한 것도.

친구들은 말했다.
"혜린아. 너 어려서부터 그랬어."
"기자가 천직이야." (-234-)


다 도전하라 하지
희망을 가지라 하지.

성공한 사람들만 인터뷰해서 그래.
실패한 사람들한테는 안 물어보잖아. (-252-)


이 책을 쓴 저자 이혜린은 소설가이면서,기자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산문집이다. 저자는 말그대로 촌철살인,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를 삐딱하게 보고 있었다.그건 참 묘한 느낌이 될 수 있다.나와 다른 세상,나의 묘한 특징에 대해서 '사람이 싫다, 회사가 싫다, 네가 싫다,내가 싫다 로 구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싫은 저자는 그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다.위선과 모순이 가득한 사회 안에서 온전히 자신조차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 자신의 위선적인 행위들을 우리는 나를 혐오하게 되고,그것을 누군가 들출까봐 전전긍긍하게 된다.그러면서도 누군가의 잘잘못을 들추는 것에 대해서 지극히 용감하다. 바로 저자는 그것을 꺼내고 있었다.부정적으로 새상을 바라보기,삐딱하게 세상을 들추기,그 안에서 자신의 이중적인 면을 들추는데 서슴이 없었고,그안에서 공감과 이해를 얻게 된다.


세상사, 싫다는 것만 알아도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고,서로가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게 된다.공교롭게도 우리 사회는 좋다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가능성과 희망,기대와 욕망,과장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성공을 탐하게 된다. 바로 저자는 그 부분을 짚어내고 잇었다. 기자로서 살아가는 것,기자로서의 직업병, 남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그 직업병은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혐오와 의심의 시작이었고, 추측이 확신으로 바뀔 때,슴끼는 스릴감을 잊지 못하게 된다. 그 안에서 저자의 삶의 구도, 사회의 처세술을 엿 볼 수 있고, 내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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