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블렌딩 - 어제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영진 지음 / 메이드인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구석에서 책을 펴든다. 빛이 들어오지 않고, 테이블의 흔들거림은 없으며, 의자는 약간 딱딱한 늘 앉던 자리,책을 읽는 것만이 지금을 버틸 수 있겠다 싶었지. 고전들을 또르르 읽다 보면 인상적인 문구를 기록해 보기도 해.깊은 바닷속을 손전등으로 비추다 보면 다양한 삶들의 생명체가 경이롭듯 ,마치 통통거리는 새우를 비췄더니,왜! 라늗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마치 삶은 넌센스 같은 소설이야. 

다시 눈을 뜬다. (-44-)


맛있다엔 기준이 없겠지. 마차지로 산다는 것에 기준이 있을까? 잘 산다고 하면 마치 사기치는 기분이 들거든. 왜냐하면 잘 산다에 대한 모델이 있을 것만 같지. 도대체 모델이 누굴까? 모르겠지만 모델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114-)


열 세살의 나를 만나고 싶었다. 시간을 되도리고 싶은 후회가 아닌 , 토닥여주고 싶은 시간들을 만나고 싶었지.

오늘은 여기, 한 손엔 라떼 한 잔.

그 사이에 피고 자란 시간들, 나와 너, 그리고 무엇이든 밥값은 하고 있을 지인들, 안부마저 생략된 씁쓸한 인연들. (-175-)


커피를 섞는다. 커피와 책, 커피와 치킨, 그리고 때로는 나만의 혼커를 즐길 수 있다. 하나의 커피와 다른 커피를 섞어서 새로운 향기의 커피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커피블랜딩이라 한다. 나 만의 취향과 맛,향기가 서로 엮이게 된다. 커피의 향기를 음미하고, 그 나의 소소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는 삭막한 도시의 생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여유로운 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여유는 생이 된다. 4600원의 행복,예쁜 까페를 찾아가는 것,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 아메리카를 마시면서, 과거 다방에서 마셨던 다방커피와 다른 느낌의 커피향기는 내 삶의 변화와 서로 상부상조하게 된다. 시간과 카푸치노, 시간과 카페라테의 조합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에게 주어진 파편화된 평범한 일상들, 그 파편들이 서로 섞이게 되면, 나만의 생이 만들어 질 수 있다.물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고,이해할 수 없는 넌센스처럼 느껴지는 생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앞에 놓여진 시간에 대해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닐런지, 커피 한잔이 주는 따스한 온기,그 따스한 온기와 시간이 서로 섞인다는 것은 내 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며,나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엮일 수 있다는 것은 커피가 주는 소중한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어릴 적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고,순간 순간 놓치면서,지나왔던 그 기억들을 비어있는 커피잔에 채우게 된다. 나의 생을 존중하고,타인의 생을 존중하는 것,그것이 책 <커피 블랜딩 >속에 있으며, 서로 섞으면서,새로우 맛과 향기,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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