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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평점 :
수문장은 김상헌을 알아보지 못하고 수어사에게 고했다. 일직승지가 서문으로 달려 나와 비틀거리는 예판대감을 맞아들였다. 새벽에 눈이 내렸다.눈이 쌓여서 언 강 위에서 하얀 봉분을 이루었다.강 건너 사공의 마을에서 말이 밤새 울부짖었다.그날 새벽에 강은 상류부터 먼 하류까지 꽝꽝 얼어붙었다. (-47-)
최명길이 잔을 들어 마셨다.차가운 술이 창자를 훑고 내려왔다.
성밖으로 나올 방도를 귀국에게 묻고자 한다.
좋은 말이다. 방도가 있다.귀국의 세자와 대신들을 우리 군영으로 보내라. 그리고 칸의 조칙을 받아라.
전에는 왕자들 중 한 명을 들이라 했다.이제 세자를 보내라니 따르기 어렵다.왕자들은 강화도로 들어간 뒤 소식이 돈절되었고, 동궁은 성 안에 계시나 종궁 또한 임금이다.
정명수가 조선말로 최명길에게 소리 질렀다.
이거 보시오, 최공. 우리가 심양에서 말할 때는 왕자를 보내라 했짐반, 여기까지 왔으니 세자로 올리느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우리가 바람을 쏘이러 이 먼 데를 온 줄 아시오, (-165-)
압록강을 건너서 송파강에 당도하기까지 행군대열 앞에 군대는 단 한 번도 얼씬가리지 않았다.대처를 지날 때에도 관아의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조선의 누런 개들이 낯선 행군대열을 향해 짖어댈 뿐이었다.도성과 강토를 다 비워 놓고 군신이 언 강 위로 수레를 미고 당기며 산성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겠다는것인지, 지키겠다는 것인지,내주겠다는 것인지,버티겠다는 것인지 주저앉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칸은 알 수 없었다. (-281-)
칸은 구층 단 위에서 기다렸다. 황색 일산의 강바람에 펄럭였다.칸은 남향으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화도에서 끌려온 빈궁과 대군과 사녀들이 칠층 단 서쪽에 꿇어앉았고, 구층 단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 청의 왕자와 군장들이 깃발을 세우고 도열했다.철갑 무사들이 방진으로 단을 외호했고, 꽃단장에 머리를 틀어 놀린 조선 기녀 이백 명이 단 아래서 악기를 펼쳤다. (-353-)
9월 독서 모임은 김훈의 <남한산성>이었다.독서 모임 이전에 한 번 읽고,독서 모임으로 두 번 읽고,다시 읽었으니 김훈의 <남한산성>을 3독을 한 셈이었다 소설 남한 산성은 인조반정에 성공하고 왕이 된 인조 때, 병자호란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소위 칸이라 부른 청나라의 제1 우두머리는 조선을 자신의 수중에 넣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인조는 영의정 김류, 예조판서 김상헌, 이조판서 최명길, 병조판서 이성구를 대동하여,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소위 왕의 사대문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남한산성으로 향하게 되었으며, 김훈의 <남한 산성>은 예판 김상헌과 이판대감 최명길 사이의 설전을 맥락에 따라서 분석해 볼 수 있었다.그건 왕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두 대감의 생각과 의견에 따라 줄을 잘 서야 하는 상황에서, 명나라와 청나라 두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2지 선다형,인생을 거는 도박 게임에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인조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즉 이 소설에서 우리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지금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이 소설은 과거 속에서 인조임금이 살았던 현재를 나타내고 있다. 즉 명나라가 강한지,청나라가 강한지 알지 못하는 인조 시대에 그들의 선택과 결정 과정에서 무엇이 변수였는지 분석해 볼 여지가 있으며, 그 시대적인 상황은 어떠했는지,작가의 상상력에 기인하고 있다.소위 명분의 나라,주자 사상을 받아들이며, 성리학의 나라 조선 이념의 근간이 되었던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그러나 대세를 따라야 하는 현실 속에서 실리와 명분이 충돌하게 된다.왕자와 시녀를 칸에게 넘겨 주어야 하는 현실, 소위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두 대감의 모습,그리고 역관 정명수가 바로보는 시대적인 해법, 꿈뜨는 조정의 실료들 속에서 노비 서날쇠는 자신의 주군이 내어놓은 임무를 수행하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보아야 하는 것은 어느 줄에 서느냐보다는 어떻게 현실을 보는 안목을 키워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교차되는 그 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