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 편지 왔습니다, 조선에서!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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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님이 당신 보려고 일부러 먼 길 가시는 거니
아무렇게나 있지 말고 화장도 좀 하고,
머리도 좀 단정하게 하고 있어.
큰 아들도 잊지 말고 꼭 인사시키고,
나머지는 알아서 야무지게 차려줘. 

남편이. (-49-)


아 그리고 말이야. 소학감주는 내가 간신히 베껴 쓴 건데.
어떻게 그걸 잃어버릴 수가 있냐? 느그들은 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건성건성 대하니 아버지 복장이 터진다.
나는 고을 일을 하는 가운데서도 틈틈이 짬을 내서 글을 짓는데,
느그들은 도대체 올해 뭐 하면서 보냈냐.
나는 4년동안 '자치통감강목'을 골똘히 봤는데,
늙어서인지 이젠 책장을 덮는 순간 기억에서 날아가 버려서 초록 한 권을 만들었지. (-65-)


제 외삼촌 권세석 씨는 쉰 가까운 연세로 여러 번 지방직 시험에 응시했었는데 아직도 합격을 못 했습니다.
외할머니가 이제 아흔의 병든 노인이시니
외삼촌의 합격만을 정말 목 빠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심부름꾼까지 보내며 이렇게 여려운 부탁을 드리는 이유는,
외삼촌의 능력이 주변 사람 중에서 제일 낫기 때문입니다. (-98-)


요즘 아주 나랏일 하느라 죽겠습니다.
고을 수령이 되어서 좋아했는데, 부임하고 보니 제가 맡은 동네는  
입에 풀칠할 거리는 적은데 일은 많아서 최악이에요.
세금납부와 군인 모집은 당연하고, 봉수대 점검하랴,
뱃사공 색출하랴, 노젓는 군인들 만들랴, 조세 보내랴,
불시에 진상품 점검이나 군대 시찰이 내려오니
잠깐이라도 깜박했다간 위에서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151-)


떠났던 당신이 보낸 지금의 편지를 읽으니,
제 마음도 피차일반입니다. 당신과 제 마음이 똑같은 만큼,
뜻이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옛말을 기억하세요.
부질없이 마음 쓰다가 꽃 같은 얼굴 상하지 말게 핫히고,
기다리고 계시면 인연이란 끊이지 않는 법이죠.
제 말이 거짓말이라 하시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시면
저 역시 당신만큼 아프고 쓰라립니다. (-235-)


가끔우리는 누군가의 편지를 접할 때가 있다.그 편지는 손으로 쓴 편지인 경우도 있고, 어떤 것은 인터넷,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여 보내는 이메일도 있다. 물론 우리는 쪽지의 형태로 소소한 편지를 쓰게 되고,그 안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사람의 희노애락들이 소소한 편지 속에 담겨지게 되고,그안에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변화 과정을 들여다 보게 된다.


꼰대질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있었다면,조선시대에도 편지 속에 꼰대의 자화상이 느껴졌다.잔소리를 편지를 통해서 하게 되고,자신의 필사본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꾸짖는 모습들은 지금 우리에게 상당히 낯선 풍경이다. 인쇄술이 없고, 디지털 세계가 없었던 그 시대에 ,책이 귀하였고,귀한 책을 비싼 돈을 주고 필사를 해 왔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귀한 물건을 잃어버릴 때 느끼는 분노는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노비에 대한 예우,우리가 생각하는 선입견으로 보자면, 노비는 천한 신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노예를 노비로 생각해 온 것이 현실이다. 조선시대 편지 속에 노비는 양반에게 있어서 필요한 일꾼이었다.그래서 신분 사회이지만, 그 신분에 대한 예우도 잊지 않았다.소위 집안에 노비가 세상을 떠나면 구색게 맞춰 장례절차를 진행하게 되고, 그 안에서 조선 사람들의 미미한 정서를 읊게 된다. 더 나아가 그 당시에도 매관매직, 청탁이 있었다. 소위 엘리트지만, 자신의 식솔 중에 일을 하지 못하면 구군가에게 청탁을 하게 된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평생에 걸쳐 과거에만 매달렸던 조선의 암울한 상황들이 그려지게 된다. 소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기녀와 사랑하게 되고, 소위 연애편지를 쓰는 것, 그 시대에 그에 맞는 법도가 있고, 그안에서 답을 찾아 나가게 된다. 조선사람들의 사랑과 애틋함,연민의 정을 연서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으며,우리는 그안에서 동등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 하나 하나 깊은 사랑의 메신저를 느껴보게 된다. 정치, 문화,생활,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서,그 당시의 또다른 웃음코드를 느낄 수 있었으며, 조선의 어려운 상형문자 한자 뿐만 아니라 언문을 통한 사실적인 편지들도 존재하여,정규교육을 체득하지 못한 이들에게 언문이 널리 쓰여졌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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