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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의 아버지가 된 신부님, 정일우 ㅣ 다문화 인물시리즈 10
강진구 지음, 이은혜 그림 / 작가와비평 / 2020년 8월
평점 :
1987년 민주화 항쟁 때였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항상 명동성당 언덕에서 스크럼 짜고 반전, 반핵가를 부르고 "양키 고 홈!"을 외쳤다.
'양키 고홈'이라는 말은 '미국인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양키는 미국인을 나쁘게 표현한 욕입니다. 1980년대는 반미 감정이 상당히 강했어요.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인을 얼마나 싫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죠.
그런데 학생들이 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그 옆에 있었던 정일우 신부님은 같이 외쳤습니다.
"나만 빼고! 나만 빼고!" (-37-)
존 빈센트 데일리 신부님은 1960년 9월 21일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0일 동안 배를 타고 일본 도쿄에 도착한 후, 다시 배를 타고 부산에 온 것입니다.(-55-)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동해서 많은 기독교인과 제정구 선생님도 잡혀갓습니다.중앙정보부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압력을 가해서 정일우 신부님은 1974년 4월에 청계천 판자촌을 나왔습니다.11개월 옥살이를 하고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된 제정구 선생님을 만나 양평동 판자촌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73-)
천주교 도시빈민회, 천주교 도시빈민문제연구소 등의 창립과 활동을 통해 빈민들과 함께했던 정일우 신부님은 막사이사이상 수상 후에도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민중주거쟁취 아시아연합 등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철거 현장의 주민들과 함께했습니다. (-81-)
정일우 신부님의 본명은 존 빈센트 데일리 신부였다.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부산까지 10일이 걸리는 뱃길을 이용해 도착하게 되었고,조선의 사회적 문제와 현상을 주목하게 된다.1960년 박정희 정권 때 한국에 도착한 정일우 신부님은 일평생 남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면서,자신의 이름을 정일우 신부님으로 바꾸게 된다.그것은 2009년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게 되면서,그 뒤를 이어 정일우신부님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성지,공권력에 저항하면서,노골적으로 핍박받았던 그들은 명동대성당으로 이끌었으며, 정일우 신부님은 2014년 지병으로 선종하게 된다.
즉 그의 삶은 자신의 일평생, 베품과 나눔의 실천이었었다.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었고,그들이 따스한 곳으로 가기를 간절히 원하였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도권 밖 철거민들 앞에 다가갔으며, 사회적인 약자들의 거쳐였던 판자집에서 살아갔던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배풀면서 살아가게 된다.좁은 방에서 자신의 삶을 의지하였지만, 그는 사회적인 활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반핵운동 광우병 파동 등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사회적인 골칫거리를 풀기 위한 대안,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평생 남을 위해 살았던 정일우 신부님은 제정구 신부와 함께, 1986년 아시아를 위해 공헌한 이들에게 주는 막사이사이상을 받게 되었다.그의 업적,그의 신념은 선종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었다.